-
-
글래머의 힘 - 시각적 설득의 기술
버지니아 포스트렐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재밌게 읽은 책. 이 책이 말하는 ‘글래머’는 정확히 라캉의 ‘대상 a’ 개념과 합치한다. 라캉의 ‘대상 a’가 역사와 예술과 문학에서, 종교와 정치에서, 사회와 대중매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되고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분석서라 해도 맞춤하겠다. 글래머란 무엇인가. 단지 번쩍이는 광채와 화려함만은 아니다. 그것은 언어 대신 이미지와 개념과 상징을 통해 설득의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상대를 매혹시키는 비언어적 수사학”이다. 수수께끼 놀음을 더 이어보자면- 패리스 힐튼에게는 없지만 그레이스 켈리한테는 있는 것이며, “투명도 불투명도 아닌 반투명”이고, “머리로는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진실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환상”이다. “품위가 넘치는 무심한 태도”와 “공들이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어떤 것이다.
저자는 글래머가 '품위', '신비감', '도피와 변신에 대한 약속' 등을 그 핵심적 조건으로 갖는다면서 풍부한 자료들을 통해 이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해나간다. 글래머의 성격에 대해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받아들인 것 몇 가지를 적어보면 첫째, 글래머는 가치중립적이다. 결코 허무와 불신을 조장하는 속임수 같은 게 아니며, 쓰이기 나름이라는 것. 좋게 보자면 글래머야말로 어쩌면 문명 그 자체일 수도 있다.(44쪽) 글래머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꿈과 환상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문명을 추동하는 근간이자 문명의 훌륭한 업적이기도 하다. 글래머가 여성운동과 흑인운동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한 사례(116~118쪽) 또한 글래머의 긍정적 효용으로서 주목할 만 하다.
둘째, 글래머는 근현대에 이르러 상업주의의 범람 및 대중매체의 발달과 함께 융성하게 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이 시대만의 특이적 현상은 아니며 유구한 역사성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글래머의 문학적 시조로서 트로이 전쟁을 몰고 온 헬레네를 꼽고 있다. 셋째, 글래머는 대상 안에 내재하는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과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며, 자극에 대한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수용 의지를 가진 관객이 주관적으로 감지해내는 어떤 것이다. 글래머가 심리적인 현상이자 수사학 도구라는 점에서 유머와 통한다는 통찰 또한 신선하다. 글래머의 성격을 로맨스 혹은 스펙터클과 대조하거나(154~157쪽), 카리스마와 대조하는 대목(215~220쪽), 시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글래머에 대해 통시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후반부 역시 흥미롭게 읽힌다.
글래머의 실체가 비록 실현될 수 없는 언어도단의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또한 그것이 불만스런 현실과 결핍에 대한 전도된 반영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글래머에서 영감을 얻고 삶의 희망과 이상과 의미와 목적을 발견한다. 글래머야말로 현실적 실천을 고무하고 구체적 변화를 야기하는 촉매에 다름 아니며 그런 점에 있어서 결국 글래머는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기도 하다. 어쩌면 글래머야말로 수학에 있어서 복소수 같은 것인지도.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코 빠져서는 안 될 필수요소라는 점에서. 체계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허구라는 점에서.
글래머가 갖는 효용과 위력은 분명하다. 그것은 유용하기에 유의미하다. “위험을 안고 있다 해도 글래머는 중요한 기술이다. 우리는 글래머가 순간적으로 제공하는 즐거움뿐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영감과 통찰력을 소중하게 여긴다. 글래머는 환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갈망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바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 보여 준다.”(45쪽) 마지막으로, 현재보다 더 만족스럽고 질적으로 향상된 삶을 향해 전진해가는 데 있어서 글래머를 완벽한 목표가 아닌 이정표나 길잡이로 사용하는 지혜가 요청된다는 저자의 마지막 당부를 새겨둘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