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서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일이 그저 엄숙하고 비장한 행사만은 아니었다. '다시래기'라고 하는 마당극과 같은 희극 공연이 엄연히 장례 예식의 일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니. 관을 앞에 두고 다시래기를 구경하면서 유족들은 울다가도 끝내 웃을 수밖에 없었겠다. 천둥이 몰아치는 날씨, 성경책, 십자가, 검은 우산 따위가 클리셰로 떠오르는 기독교식 장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가 죽음조차 하나의 축제와 놀이의 장으로 승화시킨 진도 상장례를 보고 나니 신선하고도 뭉클했다. 가족과 이웃의 죽음은 분명 슬프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진도 상장례는 죽음이라는 비극조차 생에 대한 긍정으로 치환한다. 구성진 노랫가락으로 떠난 자의 저승길을 축원하고 눈물로 얼룩진 남은 자의 삶을 다정한 해학으로 보듬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저미는 가슴으로, 하지만 또한 명랑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실제 장례식도 아닌데 이 즐거운 애도의 예술 앞에서 눈물이 다 났다. 좋았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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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3-23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간담은 니체를 지키고 있군요...간담의 어깨가 쳐졌습니다. ㅎㅎㅎ
서가는 곰발님 일전에 구입하신 서가와 비슷한 거 같습니다.
집구경,서재구경 잘 했습니다. ^^

수양 2016-03-25 00:49   좋아요 0 | URL
니체 앞에 서있기 벅찬가봐요^^
 
인테리어 원 북 - 학구파 블로거 칼슘두유의 셀프 리모델링 개척기
윤소연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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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집요한 정보수집력과 과감한 행동력에 연신 감탄하면서도, 자아를 버리고 북유럽 스타일을 철저히 고증하려 한 데서 오는 부작용일까, 나만의 혹은 나다운 무엇이라고 할 만한 그 어떤 특징이나 개성이 없는, 오로지 북유럽 인테리어에 사활을 건 집안을 구경하는 것은 마치 화장을 잘 한 무색무취의 미인을 보는 기분이다. 혹시 내년 쯤 그리스 지중해 풍 인테리어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라면 그리스 현장 답사를 필두로 한 달 안에 집안을 완벽한 그리스 양식으로 놀랍게 재편시켜놓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이 목표로 상정한 이상적 이미지를 치열하고 철저하고 충실하게 마치 시험 백 점 맞는 모범생처럼 구현해내는 그런 완벽주의 만큼은 대단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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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 빈부격차 확대를 경고하는 피케티의 이론 만화 인문학
야마가타 히로오 감수, 코야마 카리코 그림, 오상현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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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의욕 상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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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 - 관동대지진에서 태평양전쟁 발발까지의 예술 운동과 공동체 카이로스총서 35
구라카즈 시게루 지음, 한태준 옮김 / 갈무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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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생명권력이 태동하기 시작하는 20세기 초 일본 사회에서 문화예술 방면의 개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미학적 인식, 예술관 등을 살펴보고 있다. 전통적인 유대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생활 양식이 본격화되던 20세기 초 일본 사회와, 개인이 갈수록 '벌거벗은 생명'으로 시장에 내몰려지고 있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혹독한 삶의 풍경은 일견 거울상이라 할 만한 지점이 있고, 1920~30년 당시 일본의 문화예술인들이 보여주었던 새로운 인식과 지향을 탐구하는 것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이 시대에 '생명에의 감각'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한 시의성 있는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취지가 아쉽게도 이 책은 다소 난삽한 인상을 준다. 본론에서 다루고 있는 광범위한 주제들이 어떻게 '미적 아나키즘', '나 자신이고자 하는 충동'으로 엮일 수 있는지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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