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은 이렇게 해야 한다. 매뉴얼에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책임감있게, 실수없이. 자기 위치에서 응당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해내야 한다. 일을 좋아하든 말든 일이 적성에 맞든 안 맞든 그런 개인적인 사정과는 상관없이. 솔직히 그런 건 유아적인 개소리다! 개소리하는 거랑 일 잘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갑자기 왠 열불이냐면 사실은 나도 내 일이 내 적성하고 별로 안 맞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찔려서?) 일이란 건 단지 자아실현이나 생계수단만이 아니라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데 있어서 내 몫의 실천을 보태는 일이다. 촛불 드는 것 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사회적 참여다. 이런 걸 이 영화가 보여준다. 한편으로 조난 발생시 미국의 대응 시스템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처지가 이 방면에 있어서 얼마나 후진적인지 뼈아프게 실감하게 되기도 하고. 어디 그뿐이랴. 개개인의 의식수준하며, 지금 이 나라 꼬락서니 하며... 아, 말을 말자. 내 얼굴에 침뱉기라 무슨 말을 더 할까만은 그럼에도 이 모든 절망과 무력감과 냉소를 접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질적인 행동에는 뭐가 있을까. 자기 몫의 일을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것 또한 (결코 미미하지만은 않은) 한 가지 실천이겠지. 그리고 비록 매일의 대부분을 개처럼 살더라도 자기 전 몇 시간이라도 공부하고 반성하고 성찰하고. 이런 게 그저 개인적인 취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분개하고 탓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동물화, 먹고사니즘을 벗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엉뚱한 결론이지만.
책 두께가 목침만한 이유가 있었다. 인류 탐험의 역사, 천문학, 점성술, 현대물리학, 신화, 생물학, 진화론, 그리스 과학철학 등 방대한 주제를 넘나들며 썰을 푼다. 우주 과학에 관한 무수한 채널을 열어주기 때문에 생명과 우주에 관심 많은 과학 꿈나무가 읽으면 이 책을 든든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로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인구에 회자되는 고전 한 권을 아무거나 하나라도 독파해보자는 취지로 펼쳐든 책이었는데 맙소사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수면유도서적이었다. <읽다보면 잠들고 깨어나면 뒤로 돌아가서 다시 읽고 읽다보면 또 잠들고>의 무한 반복. 나야말로 혼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이거슨 설마 타임 루프? 난 지금 타임루프에 갇힌 건가? 과연 고전의 위력이란.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들어 신비현상을 체험해보게 되는 상서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