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편에는 찰스 다윈, 프랜시스 골턴, 윌리엄 제임스, 위고 드브리스(유전법칙 발견), 콘라드 로렌츠(각인 개념)를 위시한 본성의 권위자들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이반 파블로프(조건반사), 존 브로더스 왓슨(파블로브의 이론을 행동주의로 이끌어냄), 에밀 크레펠린(정신의학의 기초를 다짐), 지그문트 프로이트(형성기 경험의 중요성), 에밀 뒤르켐(사회학의 개척자), 프란츠 보아스(문화가 인간의 본성을 만든다), 장 피아제(모방과 학습이론)로 대표되는 양육의 권위자들이 있다. 이 책은 이들을 중심으로 백 년 넘게 지속되어온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양자의 절충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행동주의자들의 편협성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본성 환원주의나 유전자 결정론 또한 경계하면서, 본성과 양육의 긴밀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하고, 또 말미에선 본성과 순환적 인과관계를 이루며 조화롭게 양립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에도 주목하지만, 이 모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고찰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자의 입장은 환경보다는 본성 쪽에 더 조심스럽게 방점이 찍혀있는 것 같다. 한글 제목은 '본성과 양육'이지만 원제가 'nature via nurture'인 걸 봐도 그렇고.

 

빈곤과 폭력 등에 극단적으로 노출되어있는 조건에서는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열악한 환경이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양육(환경)은 비타민C와 같아서 적당하기만 하면 약간 더 많고 적은 것은 장기적으로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354)라는 언급이나, 연령이 증가할수록 유전자의 영향이 높게 나오고 환경의 영향이 낮게 나온다는 사실(137), “정직한 가정의 아이가 정직한 가정으로 입양되면 후에 범법 행위를 할 확률은 13.5퍼센트이고, 만약 입양 가정에 범죄자가 포함된 경우 그 확률은 14.7퍼센트로 조금 높아지며, 범죄자 부모로부터 정직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경우는 20퍼센트로 껑충 뛰고, 양부모와 친부모가 모두 범죄자인 경우는 24.5퍼센트로 급증한다”(353)는, 덴마크에서 대규모로 실시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본성과 양육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극복하려는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유전자 자체는 작고 무자비한 결정인자로, 완전히 예측 가능한 유전 정보를 들려준다. 그러나 그것의 프로모터들이 외부의 명령에 반응하면서 켜지고 꺼지는 방식 때문에 유전자는 결코 틀에 박힌 행동을 하지 않는다. 대신 유전자는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는 장치다. 우리의 뇌에서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패턴은 몸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응하면서 일분일초마다 변한다. 따라서 유전자는 경험의 메커니즘이다."(346) "유전자는 살아있는 동안 활동하고, 서로를 스위치처럼 켜고 끄며, 환경에 반응한다. 유전자는 자궁 속에서 신체와 뇌의 구조를 지시하지만,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거의 동시에 해체하거나 재구성한다. 유전자는 행동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22) 

 

다양한 연구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양육을 통해 본성이 강화됨'을 역설하고 있다. 내가 속한 이 사회는 최근에는 '수저론'이 등장할 정도로 부의 계급화가 공고해져가는 추세이고, 경제적 격차에 따른 양육 환경이 본성의 발현을 제약할 여지는 그만큼 커지고 있다. 양육 환경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미진하거나 결핍된 요소가 있으면 그것이 곧 본성의 발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다고 하니, 부모는 아이가 고유한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 줄 필요가 있겠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부모 된 자의 가장 막중한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곧 태어날 아기에게 욕심만큼 질좋은 양육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내 비루한 경제력이 벌써부터 마음에 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