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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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이라기보다는 수양록에 가깝겠다. 개체적 삶의 무상함과 미소함, 생명의 일회성과 한시성에 대한 자각, 세계의 무한한 변전 속에서 드러나는 우주만물의 연결성과 전체성에 대한 인식, 자연의 본성에 부합하고 섭리에 순응하며 주어진 운명과 소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 충동과 정념에의 경계, 이성에 대한 믿음, 공동체에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군림하고 지배하고 통치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 대목은 없고, 다만 공화주의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강한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책임 의식만이 반복적으로 드러나 있는 점이 흥미롭다), 마음가짐과 생활자세를 다잡기 위한 결의와 각오 등으로 채워져 있다. 참으로 고결하고 아름답고 위대하게 한 생을 살다 간 사람이구나. 

 

*

 

“인간이 사는 시간은 한순간이며, 그의 실체는 유동적이고, 그의 지각은 불분명하고, 그의 육신의 성분은 모두 썩게 되어 있고, 그의 영혼은 소용돌이이고, 그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고, 그의 세평은 불확실하다. 즉 육신의 모든 것은 강이고, 영혼의 모든 것은 꿈이요 연기이다. 또한 삶은 전쟁이자 나그네의 체류이며, 사후의 명성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철학뿐이다. 철학이란 우리 내면의 신성을 모욕과 피해에서 지켜주고, 쾌락과 고통을 다스리고, 계획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거짓과 위선을 멀리하고, 남이 행하든 말든 거기에 매이지 않고, 나아가 일어나거나 주어진 것을 마치 자신이 온 곳으로부터 온 것인 양 기꺼이 받아들이고, 무엇보다도 죽음을 모든 피조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해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개개의 구성 요소가 끊임없이 다른 요소로 바뀌는 것이 구성 요소 자체에는 결코 무서운 일이 아니라면, 왜 사람들은 모든 구성 요소의 변화와 해체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가? 그것은 자연에 맞는 것이며, 자연에 맞는 일은 나쁜 것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웃 사람이 말하고 행하고 생각한 것에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자기가 행하는 것이 올바르고 신의 마음에 들도록 마음 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여가를 버는가. 선한 사람이라면 주위의 나쁜 성격들을 둘러볼 것이 아니라, 좌고우면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야 한다. (...) 진실이 어디 있는지 네가 제대로 인식했다면,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은 버리고 길든 짧든 남은 인생을 네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라. 따라서 네 본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숙고하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도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참다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충동과 행동의 원천이 되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 된다. 어떤 원칙 말인가? 선악에 관한 원칙이다. 그 원칙에 따르면, 인간을 정의롭고 신중하고 용감하고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인간에게는 선이 아니며, 방금 말한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을 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악이 아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천만에!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라. ‘나는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고통을 겪지 않았고, 현재의 불운에도 망가지지 않고 미래의 고통도 두렵지가 않으니, 나야말로 행운아로구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앞으로 너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잊지 말고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이다.’”

 

“존재하는 것들과 생성되는 것들이 얼마나 빨리 우리 앞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지는지 가끔 떠올려보라. 사물들의 실체는 쉴 새 없이 흐르는 강과 같고, 그것들의 활동은 지속적으로 변하며, 그것들의 원인은 한없이 다양하고, 정지해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과거의 무한한 시간과 입을 쩍 벌린 미래의 심연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하거늘 이러한 상황에서 우쭐대거나,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상당 기간 또는 오랫동안 지속될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우는소리를 하는 자야말로 바보가 아닌가?”

 

“네가 그것의 가장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전(全) 실체를 생각하고, 그중 짧고 순간에 불과한 기간만이 너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운명을 생각하라. 너는 그것의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

 

“우주의 정신은 공동체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우월한 것들을 위해 열등한 것들을 만들어냈고, 우월한 것들은 서로 협조하도록 만들어놓았다. (...) 열등한 것은 우월한 것을 위하여 존재하고 우월한 것은 서로를 위하여 존재한다. (...) 너도 보다시피 우주는 종속시켰고, 결합시켰고, 각자에게 응분의 몫을 주었고, 탁월한 것들은 서로 화목하게 해놓았다.” (우월한 것=이성을 지닌 인간들, 이성을 지닌 인간들끼리는 서로 선의를 보이며 협력한다는 뜻으로 한 말)  

 

“너에게 어떤 일이 어렵다고 해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하고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이라면 너도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라.”

 

“황제 티를 내거나 궁정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기가 쉽기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신들을 공경하고, 인간들을 구하라. 인생은 짧다. 지상에서의 삶의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네게 정해준 사람들을 사랑하되 진심으로 사랑하라.”

 

“언제나 첫인상만 고집하고 네 마음속으로부터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지 마라. (...) 이러저러한 사물에 대하여 의견을 갖지 않고, 그리하여 영혼을 괴롭히지 않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사물 자체는 우리에게 어떤 판단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상상을 지워버려라. 더 이상 정념에 조종당하지 마라. 현재 시간에 국한하라. (...)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 받는다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네 판단이다. 또한 그 판단을 당장 지워 없애는 것은 너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너를 괴롭히는 것이 네 마음속에 있는 그 무엇이라면, 네가 네 견해를 바꾸는 것을 대체 누가 막는단 말인가? (...)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지배적 이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견을 근절하고 그들의 행동이 끔찍하다는 판단을 버릴 각오를 하라. 그러면 분노는 가라앉을 것이다. (...) 모든 것은 의견에 지나지 않고, 의견은 너에게 달려있음을 명심하라. 따라서 원할 때는 의견을 버려라. 그러면 이미 갑(岬)을 돈 선원처럼 너는 모든 것이 평온한 가운데 잔잔한 바다를 지나 안전한 항구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네가 산란한 마음으로 좇거나 피하는 대상들은 너에게 다가오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네가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라. 그러면 그것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을 것이고, 네가 좇거나 피하는 모습도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가치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의 가치와 일치한다.”

 

“너도 별들과 함께 돌고 있는 양 별들의 운행을 관찰하고, 원소들의 상호 이행을 늘 염두에 두라. 그런 것들에 관한 사색은 지상 생활의 때를 씻어줄 것이다.”

 

“과거를, 그토록 많은 왕조의 변천을 눈앞에 떠올려보라. 그러면 미래사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사는 과거사와 같은 성질의 것이고, 현재사의 리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40년 동안 관찰하든 1만 년 동안 관찰하든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더 볼 것이 따로 뭐가 있겠는가?”

 

“인간의 소질에서 으뜸가는 것은 공공심이고, 두 번째는 육체적 자극에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적 움직임과 지성적 움직임의 특징은 자신을 한정하고 감각적 움직임과 충동적 움직임에 결코 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둘 다 동물적인 까닭이다.”

 

“첫째, 평정을 잃지 마라. 만물은 보편적 본성에 따르고 있으며, 잠시 후면 너도 하드리아누스나 아우구스투스처럼 무(無)가 되어 어느 곳에도 없게 될 것이다. 둘째, 사물을 응시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되, 너는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는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바를 지체 없이 행하라. 그리고 네게 가장 정당해 보이는 것을 말하되 늘 상냥하게 겸손하게 거짓 없이 말하라.”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소에게는 소에게 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고, 포도나무에게는 포도나무에게 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으며, 돌에게는 돌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각자에게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인데 어째서 너는 네 운명에 불만인가? 보편적 자연은 너에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가져다주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나는 육신의 고통에 관해서는 대화하지 않았고, 문병 온 사람들과도 그런 것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기왕에 시작한 자연 탐구를 계속하며 어떻게 하면 정신이 육신의 그러한 느낌을 의식하면서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고유한 선을 견지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에 전념했다. 그리고 나는 의사들에게도 (...) 내게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우쭐댈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았으니까.’ 그러니 너도 몸이 아프거나 다른 상황에 놓이면 에피쿠로스처럼 처신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철학을 포기하지 않고 철학과 자연에 무지한 사람의 수다에 맞장구치지 않는 것은 모든 철학 학파에 공통된 기본 원칙이기 때문이다. 지금 해야 할 일과 그것을 수행할 도구에 생각을 집중하라.”

 

“우주가 원자의 집합체이든 아니면 질서정연한 전체이든, 나의 첫 번째 원칙은 나는 자연에 의해 지배되는 전체의 부분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나는 다른 동종의 부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명심한다면, 내가 부분인 한 전체에서 내게 할당된 그 어떤 것에도 나는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전체에 유익한 것은 결코 부분에 해롭지 않은 까닭이다. 전체는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내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본성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보편적 본성은 그밖에 어떤 외부적 원인에 의해서도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생성하도록 강요받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 따라서 내가 그러한 전체의 부분이라는 점을 명심하게 되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와 동종인 부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 모든 노력을 공동체에 유익하도록 조절하고 그와 반대되는 것은 삼가게 될 것이다. 이런 원칙들을 지켜나가면, 동료 시민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나씩 실행해나가고 공동체가 부과하는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민의 삶이 행복하리라고 네가 생각할 수 있듯이,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가 날 때는, 남자다운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온유함과 상냥함이며, 이런 태도가 더 인간적일 뿐 아니라 더 남자다우며, 힘과 근육과 용기를 갖고 있는 것은 이런 성격이지 화내고 불만스러워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생각을 떠올려라. 인간의 성격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질수록 그만큼 더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슬픔이 허약함의 표시이듯, 분노도 허약함의 표시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인간은 상처받고 항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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