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이 나라 정부는 배려심이 깊다. 시위가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차도도 다 개방해놓고 놀이판을 참 아기자기하게도 마련해준다. 그러나 만약 놀이가 끝날 때가 됐는데도 눈치 없이 계속 놀려고 하면 그때부턴 정신차리라고 엄중히 경고를 하는데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면 물대포를 사정없이 쏴서 한방에 쫓아버린다.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훈육하는 일과도 같아서 적당히 놀게 놔뒀다가 때로는 어르고 달래기도 하다가 그래도 너무 떼쓰면 하나 둘 셋 숫자를 센 다음에 흠씬 두들겨 패는 식이다. 자애롭고도 무시무시하다.

 

광장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광범하고 다양한 인간 군상 가운데는 선봉에 선 집단이 있다. 깃발을 흔들어대고 손팻말을 나눠주고(손팻말 귀퉁이에는 듣도보도 못한 정당 이름이 적혀있고) 무대 위에선 썰도 잘 푼다. 최순실 게이트를 석기시대 때부터 예견하고 준비해온 듯 노련하다. 나쁘게 말하면 혹시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저항을 위한 빌미가 아닐까. 최순실 게이트도 이들에겐 하나의 빌미가 아닐까. 정체 모를 이들 무리의 교조적인 선동에 심신을 좀비처럼 순순히 내맡기고 싶지 않은 내 심보가 그저 지나친 알러지 반응일까.

 

아무튼 광화문 시위라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뭔가 경지에 오른 듯하다. 시위하는 쪽이나 시위를 통제하는 쪽이나 각 방면으로 통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철거용역과 전철연의 사이처럼 이 둘은 유서 깊고 긴밀한 상보 관계를 이루는 듯이 보인다. 이런 방식이 최선일까. 이런 방식이 전부일까. 우리에겐 이런 방식 밖에 없는 걸까. 이명박 땐 몰랐는데 박근혜 때 또 광화문에 나와보니 기시감만 들고 양측 시위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구태의연한 패턴도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고 이런 방식이 과연 최선이고 전부일까 하는 의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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