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서문에서 저자는 철학자와 하녀 사이의 교통을 얘기하지만 글쎄 내 얄팍한 경험으로는 ‘순수한 철학자들’ 속에서 피어나는 진리가 있고 ‘순수한 하녀들’ 속에서 피어나는 진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섞이지 않는, 질적으로 상이한 차원의 진리인 것 같다. 냉탕과 전혀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온탕이 비로소 온탕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갖고 또 냉탕은 냉탕대로 그렇듯이. 교통에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보다 온탕과 냉탕에 번갈아 몸담그면서 감각의 저릿한 분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회의와 번복 속에서의 진자운동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2 앞서 읽은 <상류의 탄생>이 미국의 밝고 훌륭한 면을 보여준다면 이 책에 나오는 미국은 자못 음산하다(아래). 신문도 그렇겠지만 책도 마찬가지로 기저에 깔린 정치적 논조가 상반되는 책을 동시에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양쪽 모두 끄덕이며 감탄할 만한 꺼리가 있다.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대체로 탈규제를 통한 시장의 자유화, 공적인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 등을 추진한다. 다만 정부의 역할을 최소로 한정하는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시장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지만, 시장을 위한 개입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때 정부가 빈번히 표방하는 것이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질서를 지키자고 말하는 게 무슨 문제일까 싶지만, 문제는 법질서에 대한 강조가 시장 자체의 실패(사회적 양극화, 빈곤층의 확대)에서 파생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공안(公安)의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한다는 데 있다.

 

(...)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맞물려 위와 같은 이유로] 수형인구가 폭증하면서 미국의 교정시설은 크게 부족해졌다. 정부는 이 문제를 민영교도소를 세워서 해결하려고 했다. 민영교도소 설립은 공공 부문의 지출을 줄이려는 신자유주의 정부의 이념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 1983년에 세워져 미국 최대의 민영교도소가 된 미국교정기업(CCA, 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은 1990년대 후반에는 뉴욕증권시장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미국 5대기업에 3년 연속 선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 공적인 것의 민영화, 시장의 효율성, 모든 것을 상업화하는 정신의 극한에서 하나의 수익모델로서 ‘인간 수용소’가 출현한 셈이다. (...) 수용소가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자본의 수익과 관련 있는 산업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p.181~182

 

3 그런데 책을 왜 이렇게 맥아리 없이 만들어 놨는지. 불필요한 띠지와 책싸개를 없애버리고 책표지 하나만 빳빳한 걸로 붙여놨어도 좋았을 텐데. 내구력이 너무 떨어진다. 시간을 쪼개 며칠간 여기저기 갖고 다니면서 읽다보니 금새 헌책 같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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