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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은총
시몬느 베이유 지음, 윤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한순간의 우연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고 말할 수 있는 힘만이 예외이다. 우리는 바로 그 힘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 즉, 파괴해야 한다. ‘나’를 파괴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 행위이다. -48쪽
이 책의 모든 구절들이 죄다 저런 식이다. 문장을 하나씩 톺아보자.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의 흐름은 자연스럽다. 세 번째 문장은 반전이다. 그렇다면 다음 문장은 반전에 대한 근거가 와야 한다. 그런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일단 넘어가자. 그 힘을 왜 신에게 바쳐야 하지? ‘즉’이라는 연결부사는 왜 뒤따라야 하는데? 나를 파괴하는 것이 왜 신을 향한 봉헌의 의미를 갖지? 오리무중. 납득불가.
잠언 형식의 글임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의 연결이 도저히 매끄럽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이런 대목을 만나면 인내심에 한계가 온다. 연결이 모호해도 바로 그 모호함으로 인해서 행간에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이 생겨날 수도 있는 걸텐데 이 책에서 끝내 그런 신비로움을 발견해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독해 능력 부족인가. 읽다 던져버림. 시몬 베유는 어떤 사람일까.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스피노자주의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