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진정한 자유를 위한 관계맺기와 홀로서기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9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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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을 지향하도록 가르친다. 신이라는 단어를 나는 매우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결코 버릴 수 없다. 신과 사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신에 관한 모든 것을 나는 잊었다. 사랑을 아는 사람은 저절로 신을 알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향한 첫걸음이며, 첫경험이다. (...) 자신을 사랑하라. (...) 자신을 비난하면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 조금이라도 성숙할 수 있는가? 자신을 비난하면서 어떻게 존재를 경배할 수 있는가? 자기 내면에 있는 존재를 경배할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의 내면에 있는 존재를 경배할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의 맨 첫 물결은 자신의 가슴에서부터 일기 시작한다. 자신의 가슴에서 물결이 일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로 번져갈 수 없다. (...) 자신의 몸을 사랑해야 하고, 자신의 영혼을 사랑해야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 내면에 있는 신성을 존경해야 우주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자비롭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고요하고 명상적이며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자기중심적인 자만심은 결코 자기애가 아니다. 정반대에 놓여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 된다. 자기중심적인 자만심은 심리학자들이 자기도취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나르시시즘이다. (...) 나르시스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림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것은 진정한 자기애가 아니다. 그림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다. 그는 이제 둘로 나뉜다. 나르시스는 분열되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분열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두 존재로 자기 자신을 나눠버렸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주 많은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때 저지르는 일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의식을 가지고 지켜보라. 그것은 단지 나르시시즘일 수 있다. 상대방의 얼굴, 눈,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그저 자신의 그림자를 비추어보는 거울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백에 아흔아홉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도취였다. 사람들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이 보여주는 존중, 관심, 아첨을 사랑한다.”

 

“진정한 사랑에는 구별이 없다. 연인은 서로에게 융화된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에는 커다란 구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의 구별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관계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냥 사랑이다. 사랑은 꽃피어나고 향기를 내뿜으며 하나로 녹아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분리된 두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에만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하나가 된다.”

 

“진정한 사랑 안에는 따뜻한 냉정함이 있다. (...) 진정한 사랑에는 따뜻함이 있으나 열기는 없다. 확실히 따뜻하기는 하지만, 냉정하기도 하다. 매우 집중되어 있으며, 고요하고 냉정한 상태가 그 안에 있다. (...)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나눔이요,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로 함께 융화되는 일이요, 열병이 아니라 차가운 열정이 되리라.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게 되리라.”

 

“자신을 사랑하라고 붓다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주시하라고 덧붙인다. ‘주시’는 붓다의 이름으로 행하는 명상이다. 그러나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그다음 주시해야 한다. (...) 사랑은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있는 그대로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억압하지 말라. 무엇인가를 미워하고 반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억압한다. 억압하는데 어떻게 주시할 수 있는가? 우리는 적의 눈을 바라볼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출 수 있을 뿐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눈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얼굴, 자신의 실체를 대면할 수 없다.”

 

“사랑은 몰입이며 헌신이다. 사랑은 순간의 일이 아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영원히 지속할 수 있다. 사랑은 평생 지속하는 몰입이다.”

 

“사랑을 존재의 진정한 실체라 생각한다면, 깊은 친근감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두 가슴이 만나 하나가 된 일체감으로 춤출 수 있다면, 그대에게 다른 영성은 필요하지 않다. 그대는 이미 영성을 되찾은 것이다. 사랑은 궁극적인 경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나 절대자 혹은 진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름은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궁극적인 것에는 이름이 없다. 이름 없는 곳으로 사랑은 우리를 이끌어간다.”

 

“기억하라. 사랑은 무한하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소유하려 한다는 생각은 추하다. 누군가를 소유하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소모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건들뿐이다. 사랑은 자유를 준다. 사랑은 자유이다.”

 

“사랑은 고통스럽다. (...) 아이들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올 때와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와 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다. 어린 새가 둥지에서 처음으로 혼자 날아오르려 애쓸 때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 (...) 사랑에 의해 겪는 고통은 절대 헛되지 않다. 사랑 속에서 겪는 고통은 창조적이다. 그것은 사람을 높은 경지의 의식으로 끌어올린다. (...) 사랑이 더 높이 올라갈수록 우리는 열려있어야 하며, 연약해져야 한다. 갑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고통스럽다. 방어하지 않으며 계산하지 않아야 한다. 모험해야 한다. 그러므로 늘 위험한 삶을 살아야 한다. (...) 사랑은 가장 위대한 화두이다. 고통스럽지만 피하려 하지 말라. 사랑을 피해버리면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 그 속으로 들어가 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라. 황홀함은 아픔을 통해서 온다. 슬프겠지만, 슬픔을 통해 기쁨이 생긴다. 에고로서의 그대는 죽지만, 신으로, 붓다로 다시 태어난다.”

 

“사랑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신을 향한 첫걸음이며, 결코 건너뛸 수 없는 단계이다. 사랑의 단계를 건너뛰려는 사람은 결코 신에게로 도달할 수 없다. 사랑은 필수적인 단계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에 의해서만 자신의 총체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존재에 의해서만 자신의 존재가 향상되고, 자기도취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신의 에고가 아닌 다른 존재와 처음으로 조화로운 파장을 맞추어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 사랑은 에고의 일부분이 아닌 누군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한 여자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친구나 한 남자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어머니나 자식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모든 인류와 조화를 이루는 게 왜 불가능하겠는가? 한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그토록 큰 기쁨이었다면, 모든 인류와 조화를 이루는 기쁨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모든 인류와 조화를 이루는 게 가능하다면 새와 나무와 동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왜 불가능하겠는가?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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