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인가 - 진정한 자유를 위한 관계맺기와 홀로서기 지혜의 연금술 시리즈 9
오쇼 지음, 손민규 옮김 / 젠토피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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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는 에고와 사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에고로 인해서 자만심과 나르시시즘에 휩싸여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에고라는 게 버려야만 하는 종류의 것일까. 에고라는 것은 시비지심이기도 하고 탐진치로 인한 번뇌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분석과 비판 능력이고 이성적 논리적 판단이기도 할 텐데. 에고야말로 문명인으로서,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자질이며 오쇼 말대로 "사회는 바로 그런 생각[에고]에 기반을 두고 존재한다"(55).

 

산속에 들어가 머리 깎고 중이 된다면 모를까, 현대 문명의 한복판에서 벌어먹고 살아가야 할 처지라면 결벽증적으로 에고를 버릴 것이 아니라 차라리 에고의 강도를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야지 않을까. 에고를 버리고 사랑 속으로 뛰어들라는 오쇼의 말이 이성적 분석과 판단, 비판 능력보다 시적 정서적 감응력과 직관적 인식능력을 발휘하라는 뜻이라면, 단순히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릴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자질을 동시에 탑재하여 능력이 신장되는 편이 낫잖아.

 

여기까지 쓰고나서 좀 더 읽어보니 오쇼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마음이 있다. 그리스인의 마음과 인도인의 마음이다. 그리스인의 마음에는 알고자 하는 열정이 있고, 인도인의 마음에는 존재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 (...) 그리스의 마음은 명료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할 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인도의 마음은 오직 생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르며,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둘이 통합할 가능성은 있다. 어떤 사람이 물질에 대한 일을 할 때는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 논리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같은 사람이 명상하는 방으로 들어설 때, 마음을 한구석으로 치워두고 마음이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 마음은 손이나 다리 같은 도구이다. 내가 걷고 싶을 때는 다리를 사용하지만, 걷고 싶지 않을 때는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똑같은 방법으로 물질적인 것을 알고 싶을 때만 논리적인 마음을 사용하면 된다. 그것은 적절한 사용법이며 마음은 그 일에 딱 어울린다. 내면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는 마음을 옆으로 치워두어라. 이제 다리는 필요하지 않다.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 마음이 없는 고요하고 깊은 경지로 들어가야 한다. (...) 마음을 사용할 수도 있고, 한구석에 치워놓을 수도 있다. 마음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저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오쇼는 자신이 그리스적 인식활동과 인도적 인식활동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다 해오며 살아왔다고 하면서 우리 역시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삶은 매우 풍요로워질 거라고, 우리는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이며 모든 것을 흡수하여 웅장한 관현악단이 될 거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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