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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평점 :
좋은 일들
심보선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봄이 왔다고 며칠 전에 사서 꽂아 둔 하얀색 프리지아가 빛이 바랬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이 빈집에 홀로 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그 꽃은 그리도 차분하게 제 수명을 다했다. 시든 꽃과 썩은 꽃병 물을 버려본 사람이라면 알겠지. 거기서 얼마나 쓸쓸한 악취가 진동하는지. 죽은 꽃다발을 잘 정리해서 쓰레기 봉투에 접어넣고 꽃병을 깨끗이 씻어 엎어두었다. 내가 어제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