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음악을 안 들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오늘날로 치면 바그너는 무슨 블록버스터 영화 감독 내지는 라스베이거스 쇼 연출가 같은 그런 존재였나 보다. 쇼의 대단원을 항상 위대한 구원의 레파토리로 결말 짓는. <바그너의 경우>에서 니체는 일부러 광대 같은 문체를 구사하면서 바그너의 데카당한 면에 대해 엄청나게 열폭하고 있는데 열폭이 지나쳐서 심지어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그는 바그너를 극복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과도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그너를 물어뜯는 그는 너무나 '약자' 같다.
보나마나 바그너는 <니체의 경우>같은 건 쓰지도 않았을 텐데 아무리 니체가 강자네 초인이네 어쩌구 저쩌구 해도 자신의 사상의 일관성을 스스로 허물어버리는 이런 표리부동한 글을 읽고 있으면 차라리 측은한 마음마저 생긴다. 자기 분열과 자기 모순. 이상적 자아와 현실 자아 간의 엄청난 괴리. 니체는, 현대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과는 별개로 내게는, 사이코패스를 이상적 자아로 상정했으나 현실적으로는 너무나 '그리스도교'적이고 '약자'이며 '병자'인 인간의 균열적 존재론을 정초한 자로 와닿는다. 나랑 퍽 닮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니체가 재미있게 읽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