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신약 성경 이야기 명화로 보는 성경 이야기
헨드릭 W. 반 룬 지음, 원재훈 편역 / 그린월드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비기독교인의 처지로 서양미술사를 살펴보기가 버거워 <명화로 보는 구약 성경 이야기>에 이어서 읽었다. 보티첼리, 브뤼겔, 카라바조, 뒤러, 틴토레토, 히에로니무스 보스, 귀도 레니, 엘 그레코, 지오토, 만테냐 등등 서양미술사를 수놓은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작품을 뽑다 보니 서양미술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 작품들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보지 못했던 희귀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구약 편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도판의 질이 썩 좋지는 않은 점, 그림 옆에 작품 제작 연도를 표기해 놓았더라면 시대별 회화 양식의 변화까지 좀 더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아쉽다.

 

이 책만으로 가늠해보는 예수는 명랑하고 다정하고 격의 없고 반(反)권위적인 반면에 현실 감각이나 권력욕 내지 정치력은 다소 부족해보이고 한편으론 초능력자 같기도 하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운동권 지도자 혹은 재야 사상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카리스마 있고 독기 가득한 저돌적 혁명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유분방한 예술가 타입에 가까워 보인다. 그가 베푸는 자비심에는 신앙에 매몰된 자가 보여주는 특유의 과격하고 경직된 실천 의식도, 도덕가를 자처하는 자의 이면에 도사린 원한 감정 따위도 전혀 없어 보인다. 배후의 그 어떤 목표도 전략도 속셈도 의도도 없이, 그는 영혼과 신념이 이끄는 대로 물 흐르듯 행할 뿐 그 외에는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적어도 이 책에 묘사된 그는 진정 니체적 의미로 '강자' 같다.   

 

산속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행한 설교의 주된 화두는 위로와 용서 그리고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얘기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그러나 인간은 과연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박해하는 자를 위한 기도는 어디까지 진심일까. 어쩌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패배자의 자기기만이 아닐까. 값싼 위안이나마 얻기 위한 애처로운 자기타협은 아닐까. 그리하여 너무도 손쉽고 간단하게 출구를 찾아버리는 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피상적이고도 저열한 방식인가. 신보다는 인간을 더 믿는 나로서는, 그리고 욕망과 투쟁의 인간인 나로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장 원대하고 기적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순간은 바로 원수를 뼛속까지 치열하게 증오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역시 나는 크리스천은 못 될 종자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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