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소시오패스 - 차가운 심장과 치밀한 수완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M. E. 토머스 지음, 김학영 옮김 / 푸른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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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고 있다. 소시오패스야말로 정확히 내가 직장에서 추구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내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주인공처럼 내가 유능한가 하면 (아쉽게도) 그건 전혀 아니다. 의식적으로 소시오패스적 인간형이 되고자 함은, 오히려 타인에게 나의 직업적 무능 내지는 직업적 능력에 대한 확신 없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반동 심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선천적으로 소시오패스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자신감이 부족한 편이고, 성취욕이 낮으며, 논리보다 감성이 발달한 사람이다. 감정의 기복 역시 심하다. 공감 능력도 넘쳐 흐른다. 초자아에 짓눌려있어서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할때는 심한 죄책감을 느낀다.

 

신속 정확한 일처리가 요구되는 대부분의 직종이 그렇겠지만 이 모든 인간적 자질들은 현실적으로 업무에 커다란 방해가 된다. 자연히 나는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서 유약하다고 판단되는 혹은 거추장스럽다고 여겨지는 나의 어떤 면을 의식적으로 억누르게 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괜한 얘기가 아니다. 업무 현장에서 상호간에 만족도를 높이려면 자본사회에 특화된 인간 유형으로 인격의 셀프튜닝을 해나갈 수밖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신은 그저 공무원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했듯이 나도 업무에 충실을 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시오패스 유형으로 변모해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나를 봐도 확실히, 악은 평범한 것 같다.

 

그러나 내 안의 욕망을 최대치로 실현시키려면, 그리고 때로 모순되기도 하는 여러 욕망들을 동시에 성취하려면, 즉 초자아의 요구와 이드의 요구를 두루 만족시키려면, 또한 일터든 사회든 약육강식의 정글 속에서 강건하게 살아남으려면, 아니 생존을 넘어 강한 살아있음을 느끼려면- 소시오패스적 삶의 태도가 꽤나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즉흥적으로 떠올려보면 아마도 레니 리펜슈탈, 니체, 돈 후안, 마키아벨리, 괴벨스, 박정희 등이 강한 소시오패스 기질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덕적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자면, 다들 자신이 가진 생명력을 극도로 분출하며 살다 간 사람들인 점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실상 업무효율성과 노동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이 사회야말로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소시오패스적 인격을 적극 계발시킨 장본인이리라.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든다.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자기유지 및 증식을 위해 소시오패스적 개체들을 양성해나가고 게 아닐까 하는. 나처럼 소시오패스하고는 거리가 먼 (자칭) 식물성 인간들까지도 소시오패스화(化)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이히만도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버지였다질 않나. 나 역시 직장에서 스스로를 단련시켜 후천적 소시오패스로 거듭나느라 소외된 내 자아의 연약한 한쪽 면을 어떻게든 숨쉬게 만들어줘야 한다. 내가 아무런 경제적 보상도 없는 알라딘 리뷰쓰기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책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최대 4%가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사주명리학에서는 사주원국에 삼형살이 있는 경우 소시오패스 유형으로 본다. 형살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컨대 축술미 삼형의 경우 무은지형이라고 하여 성질이 냉혹하고 은인을 해치며 적과 내통을 잘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사신 삼형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성격으로 형액을 만난다고 하며, 자묘형의 경우 무례지형으로 성품이 포악하고 남을 무시한다고. 흔히 사주원국에 삼형살이 자리잡은 경우 그 사주의 격이 높으면 군인, 경찰, 판검사 등 권력을 휘두르는 직업을 갖게 되지만 격이 떨어지면 옥살이를 하게 되거나 각종 배신, 사고, 수술을 당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똑같은 사주를 가지고도 깡패가 되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느냐 아니면 깡패를 철창에 잡아 가두는 권력자가 되느냐, 다시 말해 천라지망을 펼치느냐 아니면 천라지망에 갇히느냐 하는 것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극과 극을 달리기로는 이 책에 나오는 소시오패스의 운명 역시 마찬가지다. 형살이라는 것이 하나의 통계학적 경향성으로 전해지는 고서(古書)의 이야기에 불과하며 괜한 편견만 낳을 뿐 실상 별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의견도 상당하므로 맹신할 것은 아니다. 다만 동양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사이코패스 유형이 태생적 기질로서 학문적으로 유형화되어 이해되고 있다는 점만큼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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