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아파트 옥상에서 누가 투신자살을 했다. 경찰차가 도착하고 시신이 수습되는 동안 산 자들의 호들갑으로 주변이 잠시 떠들썩하였으나 이내 모든 상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딘가를 향해 그토록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본 것은 그로서는 아마도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리라. 그가 온몸을 내던져 지구상에 최후의 방점을 찍은 곳은 놀이터 구석이었다. 한때 시신이 누워있던 그곳에서 이제는 꼬마들이 깔깔대며 논다.

 

흔히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허락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거야말로 선뜩한 얘기가 아닌가. 신의 매서운 눈길에 의해 우리 각자 심신의 내구력이 정밀하게 측량되어 최고치의 형벌이 저마다에게 고유한 값으로 주어진다니, 이 얼마나 잔혹한 놀이의 법칙인가. 자살은 이 가혹한 놀이판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일이다. 초유의 결단이다. 대-우주적 반칙이다. 궁극의 저항이다. 신을 향해 인간이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매서운 비웃음이다.

 

상황이 불리할 경우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작된 이 잔혹한 놀이를 자진하여 종결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아울러 우리가 처한 이 세계라는 것이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퇴장할 수 있는 열린 계(界)라는 사실을, 그날 아침 그가 내 앞에서 명쾌하게 실증해 보였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라. 여의치 않으면 죽어라. 죽음은 금기가 아니다, 라고 하얀 천에 덮인 그의 죽음이 선언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 영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위엄 있게 이 놀이를 거부한 것이니까. 죽음으로써 신 앞에 당당히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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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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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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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9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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