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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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는 개인이 사회를 마주보는 개인적인 의사 표명으로 발생의 근원이 매우 사적인 데 있다. 따라서 아티스트 자신만이 그 근원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점이 아트의 고독함이면서 또 멋진 점이기도 하다. (...) 한편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그 동기가 개인의 자기 표출 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쪽에 있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 문제의 발단을 사회에 두기 때문에 그 계획이나 과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도 디자이너와 같은 시점에서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이나 정신이 태어나고, 그것을 공유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감동이 바로 디자인의 매력이다. -p.39

 

1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구분하는 상업성의 경계가 모호해져버린 오늘의 상황에서는, 자폐적 나르시시즘에 갇혀 아우라를 위한 아우라에 천착하면서 뒤로는 교묘하게 이윤을 획책하는 '아트'보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 그 본질을 두는 '디자인'이 차라리 더 양심적인 분야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디자인 제품들이 나에게는 몹시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비싼 값에 팔리는 기이하고 충격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에선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어떤, 진정성이 느껴져서일까. 적어도 디자인은, '사기'는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 하라 켄야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치적 배경 속에서 근대 디자인의 정신적 원류인 바우하우스 사상이 태동한 역사적 사실을 들면서 근대 디자인 개념의 기저에 이상주의적인 사회 윤리가 전제되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도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의 탄생 배경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적 요청이 있었을까. 책에 따르면 디자인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존 러스킨의 사상과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 공예 운동 등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공예를 통해 정교하게 갈고 닦여온 하나의 '형태'가 기계에 의해 천박하게 해석되고 왜곡되어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자신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 생활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산업의 구조 안에 감추어진 둔감함과 미숙함에 대한 미적 감수성의 반발, 이것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사상, 또는 사고방식의 발단이 되었다고.    

 

3 일본 생활잡화 브랜드 MUJI(무인양품 无印良品)를 좋아한다. 사실 이 책도 저자가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라고 하길래 읽어본 것인데, 알고 보니 디자인 업계에서 유명한 분이었다.

 

무인양품이 목표하는 상품의 수준, 혹은 상품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적어도 돌출된 개성이나 특정의 미의식을 주장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이것이 좋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라는 강한 기호를 갖게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브랜드가 그러한 방향성을 추구한다면 무인양품은 그에 반대되는 방향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목표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으로'에도 정도가 있다.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이 '~으로'의 수준을 가급적 높이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이'는 개인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강한 태도가 느껴진다.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우동으로 충분해요'라고 대답하는 것보다 '우동이 좋아요'라고 대답하는 편이 기분도 산뜻하고 우동에 대해서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이와 똑같은 말을 옷에 대한 취향이나 음악의 기호, 생활 스타일 등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기호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태도는 '개성'이라는 가치와 더불어 언제부터인가 필요 이상으로 존중받게 되었다. 자유란 '~이'에 가까운 가치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이'는 가끔 집착을 포함한 에고이즘을 만들어 불협화음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결국 인류는 '~이'를 향하여 지나치게 줄달음치다 이제는 막다른 길에 들어선 것은 아닐까? 소비 사회도 개별 문화도 '~이'로 달음박질치다 세계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으로' 속에 작용하는 '억제'나 '양보' 그리고 '한발 물러선 이성'을 평가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으로'는 '~이'보다 한 수 높은 자유의 형태가 아닐까? '~으로'에 포기나 작은 불만족이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으로'의 수준을 높인다면 포기나 작은 불만족을 완전히 털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으로'의 차원을 창조하여 자신만만하면서도 지혜로운 '이것으로 충분하다'를 실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무인양품의 비전이다. -p.122

 

하지만 무인양품의 비전에 걸맞지 않게도, 무인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인양품으로 충분한 게 아니라 무인양품 필요할 듯ㅎㅎ. 소비주의를 지양하는 절제와 검약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시장에서 구매를 통해 익혀 나간다는 게 웃픈 아이러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무인양품 매장에 갈 때면 흥분(?)된다. 단정하고 간결하며 기능에 충실한 제품들로 가득한 그곳이야말로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에듀케이션'의 현장이기에. 하라 켄야는 이 책에서 '무인양품의 사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4 디자인을 꼭 사물에만 적용되는 개념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겠다. 생활 환경과 삶의 방향과 어쩌면 우리 자신의 운명까지- 디자인의 외연을 확장하여 생각해볼 때 이 책이 주는 울림은 보다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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