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 미술사 철학으로 읽기>라는 책에서 '돌아온 탕아'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눈에 밟혀 이후로 자꾸만 생각이 난다. 렘브란트는 왜 이런 걸 그렸을까. 그는 이 장면을 거리에서 실제로 본 것일까. 용서를 비는 저 탕아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 저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이야기도 안 잊혀진다. "한 선비가 기녀를 사랑하였다. 기녀는 선비에게, 선비님께서 만약 제 집 정원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백일 밤을 지새우며 기다린다면 그때 저는 선비님 사람이 되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흔 아홉 번째 되던 날 밤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팔에 끼고 그곳을 떠났다."
김영승의 <슬픈 국>이라는 시도. "모든 국은 어쩐지 / 괜히 슬프다 // 왜 슬프냐 하면 / 모른다 무조건 // 슬프다 //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 너무 슬퍼서 // 고깃국은 발음도 못 하겠다. // 고깃국은... / 봄이다. 고깃국이." 지하철 안전벽에서 우연히 본 이 시도 간혹 생각이 난다.
이런 것들이, 잊혀지지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몸 속 깊은 곳에 무슨 결석처럼 쌓여가는 것 같다. 발음도 못 하겠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왜 그러냐 하면 모른다 나도. 나도 그냥 괜히 그렇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그런 게, '국' 같은 게, 독서의 동력이 된다. 뭐라도 더 읽고 싶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