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사상 - 철학적 해석
박이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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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노장사상이 철학, 종교, 이념이라는 세 차원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도(道)'와 '무위(無爲-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무위)' 그리고 '소요('逍遙- 실천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치관으로서의 소요)'를 각 차원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으로 상정하여 차례로 세 측면을 고찰하고 있다. 먼저 철학으로서의 노장 사상을 고찰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것은 언어철학적 방법론이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가장 '서양'철학다운 방식으로, 가장 원칙적인, 정공법적인, 결벽증적인 방식으로 동양철학의 진수를 분석해보고자 하는 시도인가.

 

그러나 분석철학의 틀을 통해 노장의 '도'개념에 접근하려는 태도는 노장사상을 왜소하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연장통에서 하필이면 분석철학이라는 연장을 꺼내들고 노장사상에 다가서려는 이 책의 내용 자체가 나로서는 상당히 불만스럽고, 감히 이 책의 내용이 ‘바보 같다’는 ‘직관적인 인식’을 갖게 되지만, 배움이 일천하여 이를 언어로서 논리화 체계화하여 분석철학 스타일로 증명할 깜냥이 없으니 결국 나의 이러한 직관적 인식은 타당성을 밝힐 수 없는 무의미한 헛소리일 뿐인가. 하하.

 

노장사상이 보여주는 직관주의적 인식론과 관련하여 저자는 언어 이전의 직관적 인식은 "자연현상 안의 현상에 지나지 않지 결코 인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 "어떤 대상이 무엇무엇이라고 언어로 진술됐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가 사물현상을 진술한다고 했을 했을 때 진술하는 언어에 적용하는 말"이 곧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식이라는 개념을 너무나도 결벽증적으로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표상 불가하고 대상화 할 수 없는, 언어를 넘어서는 외부의 자극 혹은 대상은 (주체가 단순히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무의식 깊이 은폐되고 억압되어 말실수라든가 꿈 혹은 반복강박증과 같은 병리적 증상으로 난데없이 출현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의식 수준에서의 인식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암시된 것들을 통해 바로 그 무언가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가늠해볼 수가 있다.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노장사상을 이해(와 더불어 공감)하기 위해서는 분석철학 보다는 차라리 정신분석이라는 연장을 꺼내드는 편이 더 현명해 보인다. 가령 노자의 도사상은 후기 라캉이 천착했던 실재 개념을 적용하여 보다 정교하고 심오하게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아직 완독한 것은 아니다. 뒷부분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급하게 뭔가를 적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지금 다소 격분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내용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철학적 식견이 부족하여 저자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의 초반부만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확실히 느끼게 되는 점은 두 가지다. 내 평생 분석철학에 호기심을 갖고 탐구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게 첫째이고, 정갈한 논리와 격조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박이문 선생의 글은 학문적인 글보다는 수필로 접하는 편이 낫겠다는 게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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