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주체 -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
브루스 핑크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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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이 “과학적 담화의 구조와 작용을 어떤 근본적인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는 하지만, 그 역시 과학과 마찬가지로 여러 담화들 가운데 단지 하나의 담화에 불과하며, 애당초 대문자 S를 가진 과학Sicence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브루스 핑크의 언급(267)은, 라캉이 세미나17에서 돌연 S1의 절대성을 부정해버렸던 사실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세미나11에서 S1과 S2는 원초적 억압에 대한 논의에서 도입되며, [$와 결합하는 단항적 기표] S1은 어머니의 욕망을 나타내고, [S1에 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최초의 이항적 기표] S2는 부성적 은유의 작용을 통해 원초적으로 억압되는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낸다. 세미나17에 이르러, 사실상 그 어떤 기표든, 이런저런 때에, 주인기표(S1)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단지 여하한 오래된 기표”에 불과한 S2에 대립되는 바, 여러 S1 가운데 하나로서 볼 수 있게 된다. -p.341 6장 미주 15

 

S1이 결코 절대적인 무언가가 아니며 그저 여러 S1들 가운데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하나에 불과하다면, 정신분석이 탐구하는 진리로서의 무의식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라캉의 온갖 언설들과 수학소들이 무수한 이항적 기표들이라면, 그 모든 이야기들을 포괄하는 S1, 곧 라캉이 평생토록 심혈을 기울여 얘기하려 했던 무의식 역시 “단지 여하한 오래된 기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론 역시 하나의 담론에 불과하다는 선언이 과연 자신의 이론 안에서 가능한가. 그렇다면 대체 라캉 이론과 무의식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캉 이론이 과연 무의식을 탐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론적 당위와 근거가 있는가. 정신분석이 정신을 분석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기 붕괴적인 선언을 자기를 구축하기 위한 명제로서 정식화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어떤 기표든 주인기표(S1)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라캉의 주장 자체가 “마음속에 그려질 수는 있지만” “구성하기는 불가능한”, “위상학적 용어들로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정확하게 시각화할 수도 구성할 수도 없는” 크로스-캡(230)처럼 느껴진다. (대상a를 직면하도록 하기 위한 일환으로 분석자를 당혹과 혼란과 점증하는 의문들 속에 휩싸이게 만들면서 돌연 상담을 끝내버리곤 했다는 라캉의 임상적 방법론에 대응하는, 라캉 이론 추종자들을 정신차리게 만들기 위한 이론적 방법론인지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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