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왜 그 친구한테 시기 질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알러지 반응에 가까운 그런 격렬한 적대감까지도 느꼈는가 생각해 보면요. 제가 싫어하는 저 자신의 어떤 저속한 경향을 그 친구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구현하고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책을 장식으로 읽는 모습이요. (...) 뭔가를 취미로 한다는 건 결국엔 진실되지 못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정성이 없는 거라는 생각이요. 허세와 시늉에 불과한 거라는 생각이요. 예를 들면 취미가 독서라는 것도 말이죠. '취미'로서의 독서 활동이라는 게 뭘까요. 심하게 말하면 삶의 귀퉁이를 장식하는 꽃무늬 레이스 같은 거 아닐까요. 삶의 모습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꾸미고 연출하기 위한 장치 같은 거요. 그런 점에서라면 철학책을 취미로 읽는다는 것처럼 역겨운 일은 없는 거 같아요. 앎의 추구를, 진리 추구를 취미로 한다는 거잖아요. 그거야말로 허영의 극치가 아니겠어요. 완전히 제대로 딜레탕티슴인 거죠. (...) 진정성은 있으나 재주가 부족한 인간은 안타깝고 측은하지요. 반면에 제법 귀여운 재주를 부리기는 하나 근본적으로 진정성이 없는 인간은 역겨워요. 신이 유미주의자라면, 은총은 후자보다는 전자를 향할 것 같아요. 역겨운 인간보다는 가여운 인간에게 훨씬 더 미학적인 구석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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