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의 주체 -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
브루스 핑크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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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은유와 주체성의 재촉: 소외, 분리, 환상의 횡단이라는 세 가지 은유화의 계기에 의해 구성되는 정신분석적 주체는 '응결물로서의 주체'와 '틈으로서의 주체'라고 하는 두 얼굴을 갖는다.

 

(1)응결물로서의 주체

한 기표를 다른 기표로 대체하는 것에 의해 혹은 한 기표가 다른 기표에 미치는 사후적 효과에 의해 결정되는 의미들의 침전물. S→S2의 의미작용이 일어날 때 소외되는 주체. 즉, S→S2→S3→S4 등으로 의미화되는 $.

 

응결물로서의 주체인 $는 실재 속의 주체, 기의로서의 주체이다. 그것은 거세된 주체이기도 하다. 만약 $가 환상의 횡단으로 알려진 추가적 분리를 아직 겪지 않았다면, 그것은 불충분하게 거세된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불충분하게 거세된 주체=대상a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혹은 점령된 상태(대상a/$)의 주체=아직 타자의 욕망(대상 a)을 주체화하지 않은, 그리고 타자에 대한 자신의 증상적 복종에 전염되어 있지만 그로부터 부차적 이득을 얻는 주체.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자신에 대한 원인으로 취하기 위해서는(환상의 횡단이 이루어져 '$/대상a'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타자에 종속된 바로서의 자신의 다소간 안락한, 만족스럽게 초라한 지위(불충분하게 거세된 주체의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사후적으로 의미화되어야 할 어머니의 욕망(S1)을 단항적 기표라고 한다면, 타자의 욕망의 기표(=아버지의 이름)는 원초적으로 억압되는 이항적 기표(S2)이다. 이 기표는 아주 유일무이한 것이다. 어머니와 아이 간의 이자 관계를 부수는, 그럼으로써 굴림대 역할을 하는 최초의 기표 S2. 분할선 위에 놓이는 최초의 기표 S1을, 최초의 기표로서 사후적으로 의미화시켜주는 S2. S2는 원초적 기표이며 의미없는 주인기표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기표들이 그것에게 주체를 대표하는 기표다. 예를 들면 <그것은 오렌지다. 오렌지는 감귤류에 속하는 열매의 하나다. 오렌지는 모양이 둥글고 주황빛이며 껍질이 두껍고 즙이 많다.>라는 언술에서의 오렌지가 최초의 아버지의 이름인 S2. 이 기표가 빠진다면 다른 기표들은 아무 것도 대표할 수 없다. 원초적 기표는 주체성의 필수 조건이다.

 

분할선 위에 놓이는 최초의 이항적 기표 S2는 의미를 결여하는 무의미적 기표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S2 자체의 의미는 없지만, 이 의미 없는 S2를 설명하기 위해서 S2를 중심으로 무수한 S들이 결집하고, S들은 자기들 사이에서 관계를 갖는다. 예를 들면, 오렌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감귤류, 열매, 둥근 모양, 주황빛, 두꺼운 껍질 등등이 하나의 계열로 묶이게 된다. 오렌지를 설명하려는 목적이 없었던 상황에서는 서로 간에 전혀 무관하고 무심했던 기표들이 별안간 오렌지를 중심으로 갑자기 하나의 계열로 엮이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초의 이항적 기표 S2는 다양한 S들의 작용을 통해 언어의 운동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와 같이 "주체는 의미들의 성좌나 덩어리에 불과하다. 주체가 모든 S2들과 S1의 관계에 의해 생성된 의미들의 전체 집합에 있는 것이라면, 주체는 타자에 의해 제공된 의미들의 침전물처럼 보인다. (이때 주체의 진술들은 타자 안에서만 의미를 지니거나 타자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을 뿐이다)." 타자의 장에 있는 주체. 타자에 의해 코드화된 언표로서의 주체. 타자 안의 의미로서의 주체.

 

(2)틈으로서의 주체

주체는 단순히 의미들의 침전(위에서 말한 응결물로서의 주체. 상대적으로 수동적이고 정적이고 화석화된 측면의 주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주체는 기표들 사이의 연결고리의 형성이기도 하다(동적이고 생성적인 측면의 주체). 이것이 곧 틈으로서의 주체다. 틈으로서의 주체는 기표들 사이에 형성된 통로이다. ‘길트기’로서의 주체. S1과 S2를 서로 연결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주체. 두 기표들 사이의 연계를 확립하면서 실재 안에 틈을 낳는 어떤 것. “황급한 운동”으로서의 주체. 재촉으로서의 주체. S에서 S2로 날아가는 “불꽃”으로서의 주체(S가 S2와 만날 때 파생하는 순간적인 섬광). S와 S2 사이에 “연계를 창조하는” 주체.

 

S1/$이라는 도식을 신경증자의 경우에 적용해볼 때, S1이 담화로부터 고립된 어떤 기표를 지칭한다면, (S1=신경증자가 현재 고착되어있고 예속되어 있는 어떤 것. 신경증자가 지금 멈추어 서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막다른 골목, 일종의 정지점, 궁지) 분석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주체를 동결시키는(=주체와 고착을 이루고 있는) S1을 변증화하는 것이다. (S1을 다른 기표사슬과 연결시켜주기, 즉 S1을 S2, S3, S4...로 은유하기) S1의 외부를 도입하는 것. S1과 또 다른 기표 S2 사이에 대립을 확립함으로써 S1이 S2, S3... 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것.

 

그렇게 새로운 통로와 연결시켜서 분석자의 막다른 골목을 뚫어주는 분석가의 정신분석작업이 성공하면, 다시 말해 의미화 되지 않고 있었던 분석자의 S1을 의미화 시켜주고 나면, 주체를 예속하는 주인기표로서의 S1의 지위는 변한다. 또한 S1과 또 다른 언어적 요소 사이에 다리가 세워지면서 어떤 상실(a)이 발생한다. 틈으로서의 주체는 S1과 S2 사이에 은유의 창조적 불꽃이 튀기면서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가 다시금 의미와 존재 사이에서 분열된다. 4장에서 말한 맥동으로서의 주체가 바로 이 순간인 듯. 

 

S1가 S2로 대체되는(=은유되는) 사이에서 섬광처럼 생겨난 주체와, 그 와중에 발생한 상실(a)과, 좌천되는 주체 $. 주인기표가 변증화될 때, 은유화가 발생하고, 주체가 재촉되며, 주체는 원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위치를 떠맡는 이 모든 동시적 과정들이 분리 및 추가적 분리(환상의 횡단)의 과정에 속한다. $<>a 상태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타자의 욕망을 주체화할 때(a를 변증화할 때, 환상을 횡단할 때), 그럼으로써 주체의 위치를 변경하고 증상을 재배치할 때, 소외는 극복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라캉에게 있어서 정신분석의 종료 시점은 증상이 해소될 때가 아니라 증상의 재배치가 완성될 때라는 것. 라캉 이론에서 증상의 해소 같은 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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