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에서 파는 애호박에 전족(纏足)의 풍습이 생긴 지도 오래다. 애호박을 감싼 비닐 포장지를 인큐베이터라고 하는데, 애호박이 어느 정도 자라면 농가에서 일제히 이것을 덧씌워준단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란 애호박은 모양이 예쁘고 속이 알찰 뿐만 아니라 농약으로부터도 안전하여 상품가치가 높다고 한다. 된장국 끓일 때 관찰해보면, 애호박은 인큐베이터를 벗겨내도 결코 부풀어 오르거나 폭발하거나 주저앉는 법이 없다. 애호박에 비하면, 보정속옷을 벗자마자 축 늘어져버리는 내 뱃살은 얼마나 철없고 자유분방한가. 해방의 몸이 되었어도 결코 자세를 흐트러뜨릴 줄 모르는 애호박은 슬프다. 그 속이 말없이 야물고 단단한 줄 알기에 더욱. 애호박은 기괴한가? 어리석고 불쌍한가?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오늘 저녁 도마 위의 발가벗은 애호박은 의젓함을 넘어 우아해 보인다. ‘우아’라는 것은 중력을 이기는 힘, 그러니까 조건을 거스르는 힘이라고 어느 책에선가 그랬었는데 나는 오늘 반대로 어떤 처절한 순응에서 ‘우아’를 본다. 애호박의 우아한 영혼으로 끓인 된장국을 감사히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