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책세상 니체전집 7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미기 옮김 / 책세상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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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분석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인간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그 모든 원인을 제거하고 자신들을 구원해줄 외부적 개입자로서 ‘신’이라는 표상을 창조해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리스도교 인간들은 필요에 의해 스스로 만들어낸 이 ‘신’이라는 표상에 의해 짓눌리기 시작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신과 모든 면에서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자신의 본질이 왜소하고 비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신을 죽여버린다. “신의 표상이 없어지면 신의 명령에 대한 위반으로서의 그리고 신의 손에 있는 인간의 오점으로서의 ‘죄’의 감정도 없어진다.”

 

구원을 통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제거하여 구원의 서사 구조 자체를 붕괴시켜버림으로써 해방될 것. 니체는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신은, 함부로 죽여 버리기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유용한 존재가 아닐까.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굴욕과 죄책감, 공포와 불안과 비루함의 감정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신이라는 것은 동시에 우리에게 안정감과 충만감을 주고, 자극적 흥분과 희열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적 측면에서 신은 마치 어른거리기는 기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도저히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대상 a 같고, 도둑맞은 편지 같고, 마력적인 요부 같다. 관계를 끊을래야 끊어버릴 수 없는 애증의, 미지의 대상.

 

사랑이 다른 가치보다 높이 평가되는 까닭이 그것의 이타적 본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휘하는 효용과 유익성에 있다는 니체 자신의 논리대로, 신 역시 그 본질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만족감과 쾌감을 주기 때문에 신을 폐기하는 문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신의 존재감이 과도할 때 인간은 신에 짓눌려 신경쇠약이 되어버리고 또 그러한 신경쇠약에 대항하려는 수단으로서 자기를 학대하는 전형적인 그리스도적 인간이 되어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을 없애버리면 아마도 인간은 따분하고 권태로워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혹은 기준점을 상실함으로써 또 다른 신경쇠약에 걸리게 될 것이다.

 

신은 폐기될 수 없다. 신이 우리에게 안락한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에. 또 신이 우리를 고무시키고 황홀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래서 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니체는 형이상학적 예감 혹은 직관이라는 것은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내적 바람일 뿐, 그 자체가 형이상학적 진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리고서는 진리의 출생지를 표방하는 철학을 위시한 모든 학문들을 망치로 깨부수려 했지만, 그럼에도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형이상학적 진리에 대해 인식했던 철학자였으며, 어떤 면에서는 니체 자신이야말로 또 다른 형이상학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니체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두려움과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을 극복하기 위하여 가장 높은 산맥으로 위험한 길을 오르”다가 추락해버린 자가 아닌가. 내가 보기에 그는, 그 자신이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부정은 언제나 우리를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부정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산출해내지 못한다. 부정은 대개 겉으로는 파괴하는 척 하면서 실은 부정의 대상과 공모한다. 신을 부정하는 것보다는, 신이 아닌 '신성'을 탐구해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니체는 이마저도 의심하고 경계한다. 이 책 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성마저도 은근히 부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살아가는 날이 다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장기적으로, 인식의 노력을 기울여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니체가 아닌 다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는 편이 낫겠다. 니체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뭔가 불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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