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브루흐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스코틀랜드 환상곡 / 비외탕 : 바이올린 협주곡 5번
RCA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바람이 매섭던 어느 겨울 밤, 거나하게 취한 채로 아파트 입구 계단에 부랑자처럼 쭈그리고 앉아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던 적이 있다. 처연한 선율을 타고 취흥은 바야흐로 정점으로 치달아 아마도 1악장 마지막 부분 쯤이었을 거다. 내가 오열하기 시작한 것은. 날카로운 바람이 불콰해진 얼굴을 후려칠 때마다 뼛속에서 눈물을 짜내어 울었다.

 

도무지, 도무지가 서러웠다. 그 어떤 달콤한 밀어와 친밀한 속삭임으로도 결코 메워질 수 없는 사람 사이의 도저한 심연이 그랬고, 우리는 결국 한없이 개별적인 존재자로서 저마다 오롯이 홀로 세계를 떠안아야 한다는 매서운 우주의 생리가 그랬다. 그리고 그 설움을 이제는 하나의 당위로서 내면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제법 어른스런 자각조차도 결국은, 모두 다 설웠다.

 

이후에도 브루흐 협주곡을 무던히 들었지만, 그날 밤 만큼의 속절없는 비감을 다시는 얻을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밤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철저한 단자로서의 제 존재를 난생 처음으로 대면한 어느 미욱한 짐승을 위무하는 제의로서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