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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한 젊은 역사가의 사색 노트
이영남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책 뒷면에 적힌 과장된 수사에 비해 내용은 다소 부실하다. 저자가 한국현대사를 전공했다기에 나는 푸코식의 고고학-계보학적 관점을 적용하여 새롭게 한국사를 재해석한 책인 줄 알았다. 일전에 한국 현대사회의 자기계발 열풍을 푸코적으로 분석한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를 몹시 흥미롭게 읽은 터라 더욱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푸코를 창조적으로 변형”한 책이 아니다.
책의 3/4 가량에 걸쳐 푸코의 인생역정에 대한 저자의 지순한 사랑의 헌사가 이어지는데 사실 이 부분은 디디에 에리봉이나 폴 벤느의 푸코 전기를 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책 후반부에서 짧은 분량으로나마 자본주의적 효율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조명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인식론적 지층을 발굴하고 담론들의 배치를 탐사했다고 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자가 조금이라도 푸코 식으로 한국사를 해석해보려 했다면 가령 이런 구절을 쓰는 데 있어서도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경쟁력이라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행복과 존엄을 지키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개인의 행복과 존엄을 파괴하고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p.279
이런 식의 저자의 입장은 난감하리만치 근대적이다. 근대적이라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토록 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어떻게 푸코를 적용하여 한국현대사를 분석할 수 있었겠느냐는 뜻이다. 푸코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잘 알겠고, 한국사 기술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과 포부 또한 이해하는 바이지만, 솔직히 ‘푸코의 어깨에 올라탄 국내 역사학자의 한국사 해석’을 기대한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