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e시대의 절대사상 21
김응종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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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전에 어느 독서모임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열심히 발제를 준비해 갔건만 ‘재미나게 각색된 한편의 거대한 시나리오 같은 이론’이라는 박한 평가를 얻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긍할 만한 반박이다. 월러스틴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브로델의 역사관 역시 맑스주의 역사관 못지 않게 작위적일는지도.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브로델의 장기지속 모델을 적용하여 섣부르게 미래를 전망하려는 시도란, 확인된 우연들로부터 선험적 법칙을 짜맞추려는 도박사의 오류에 불과한 것인지도.

 

이 책 역시 비판적 견지를 유지하면서 브로델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령 저자는 ‘사건-구조-콩종튀르’의 체계로 구성되는 브로델의 역사관에 대해서, 구조를 이루는 사건과 '먼지'(브로델의 표현)에 불과한 사건들을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만약 그런 구분이 임의적이라면 구조 및 콩종튀르 역시 주관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유럽의 세계-경제가 팽창한 것이 식민주의 무역 등 외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서가 아니라 고유의 역동성에 근거한 내적인 힘의 축적 덕분이었다는 브로델의 논리에서 유럽중심주의적 사관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브로델의 역사관을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또 다른 형식'의 대화로 받아들여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정적인 의심과 편견을 잠시 제쳐두고,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적용해보고자 한 시도, 불연속적이고 분절적인 구분에의 시도에 의의를 두어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특정 관점에 따른 역사의 해석을 놓고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일보다 더 심도있게 주목할 만한 것은, 어떤 새로운 관점과 제안과 해석이 당대인들에게 의미있게 받아들여지고 그에 파생하는 새로운 사고가 촉발되어 궁극적으로 기존의 관념 체계가 변화를 겪기 시작하는 그런 현상 자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합성'이 다소 불투명하더라도, 파급력과 영향력을 갖춘, 다시 말해 '기능성'을 갖춘 지식이라면, 그 역시 진리를 구성하는 한 조각의 퍼즐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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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는, 브로델이 상업-산업-금융이라는 성장에 따른 단계별 이행으로 자본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브로델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을, 최대 이익이 보장되는 형태라면 상업이든 금융이든 어떤 영역이나 민첩하게 ‘미끄러져 들어가’ 그것을 독점의 수단으로 삼는 자본의 능력에서 찾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마치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T2000처럼 상업의 모습으로도, 산업의 모습으로도, 금융의 모습으로도, 독점이 가능한 영역이면 어디든 존재하는 것. 그런 점에서 브로델은 특정 단계에서 독점이 자유경쟁을 대체하면서 자본주의의 성격이 전환된다는 맑스의 이론적 전망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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