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시와 처벌 ㅣ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 권력은 신체를 하나의 거점, 작용점으로 삼기 위해, 공격하고-낙인찍고, 훈련시키고-의식을 강요하고-기호를 부여하는 식으로 신체를 제조한다. 일련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신체는 강제적 복종의 구조 속에 편입되어 ‘생산하는 신체’로서 활용된다. 이때 신체에 관여하는 권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공포를 주지 않으며, 치밀하게 계산되고, 기술적으로 조직화되는 어떤 것이다.
권력은 특정 영역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의 관계에 내재하는 힘이다. “권력은 하나의 소유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전략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그 권력지배의 효과는 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열, 조작, 전술, 기술, 작용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작용하고, 행사하고, 관철되고, 효과를 발생시키는 권력은, 명사형이기보다 동사형에 가깝다. “권력은 소유되기보다는 오히려 행사되는 것이며 (...) 지배계급의 전략적 입장의 총체적인 효과이며, 피지배자의 입장을 표명하고, 때로는 연장시켜주기도 하는 효과”이다. 또한 권력의 관계들은 일방적이지도 획일적이지도 정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권력의 그물망은 다수의 대결점과 불안정성의 근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언제나 불화와 갈등과 전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들이 ‘사건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놓이는 그물눈 전체에 어떤 효과가 발생해야 한다.
권력은 지식을 창출하며, 그 역도 성립한다. “권력과 지식은 상호 직접 관여한다는 점이고, 어떤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적 관계를 상정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과 지식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권력이 어떤 형태의 지식을 만들어 내고, 그 지식이 하나의 장치로서 권력의 여러 성과들을 뒷받침하고 강화해준다. 지식을 형성하는 가능성의 조건들이 권력관계 속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모든 지식은 권력의 전략에서 예외적으로 벗어나 생성되고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근대정신(=근대의 지식, 근대적 담론, 인간과학과 휴머니즘)과 근대권력(=규율과 훈련과 감시의 체계)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권력의 관계와 작동을 해부하는데 있어서는 형벌체계를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형벌체계야말로 권력의 전략과 효과, 권력의 신체 관리 기술을 가장 극명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2 오늘날의 형벌은 신체의 자유 제한, 권리 박탈, 의무의 강제 이행 등의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사회에서의 형벌은 신체 자체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게 형벌의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에는 군주와 그 권력의 물리적인 현존이 불연속적이고 불규칙적이며, 군주가 사실상 스스로 만든 법 위에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벌은 반드시 공포의 효과를 펼쳐보여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고통이 마구잡이식으로 자행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죄의 경중을 평가하고 계량하여 다양한 부위에 다양한 방식으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육체적 고통을 부과하는 형벌의 기술이 적용되었다. 강도에 따라 엄밀하게 수치화되고 물량화, 등급화되는 고통.
신체형은 권력을 과시하는 사법의 의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최대한 사법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하게 거행되어야 했다. 끔찍하고 두려우면서도 즐겁고 아찔한, 그러면서도 교훈을 주고, 복종을 유도하는 대중오락으로서의 신체형. 여기에는 “국왕이 자신의 인격에 가해진 공격에 대한 보복을 행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금지의 위반에 대한 처벌 + 권위를 경시한 행위에 대한 보복 + 권력의 본질적인 우월성에 대한 과시적 주장 + 상처받은 군주권의 회복. 신체형은 궁극적으로 “범죄자의 처형당하는 신체를 통해 군주의 격앙된 현존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그 목표이다. 신체형은 사법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통치자의 승리를 축하하는 ‘예식’으로서의 신체형.
신체형이라는 사법권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증거, 증언에 의한 논증은 필수적이다. 설령 ‘증거’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한 것이더라도 권력이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에 의거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의 행사에 있어서는 진실의 생산 절차인 취조, 조사, 증언, 증거, 심문, 선서, 자백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 모든 절차가 범죄의 진실을 공명정대하게 생산해내는 법률적인 의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백’은 최고의 증거다. 자백은 권위가 부당함의 누명을 벗고 진정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진실이 완전히 힘을 발휘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백하는 범죄자는 자신을 불리하게 하는 이 진실 생산 의식에 참여함으로써, 형사상의 진실 생산 게임에서 한 배역을 떠맡는다. 그런 면에서 자백은 일종의 포기의 제스처이며, 화해이자 협조다.
자백은 양의성을 갖는다.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스스로 배역을 떠맡아 게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는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자백은 ‘증거’이면서 동시에 ‘증거로 만들기 위한 대상’(증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포획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사법권력의 행사에 필수적인 진실 생산 절차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폭력적 강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백이라는 증거를 수집을 해야 하는데, 자백을 위해서는 고문도 불가피하다. 사실 이 시대의 고문은 엄격하게 체계화되어있는 명백한 사법적 행위였다. 재판관은 용의자에게 고문을 부과함으로써 네가 이기거나 내가 이기거나 둘 중의 하나인 진실의 결투에 뛰어든다. 고문해도 자백하지 않으면 용의자가 이기는 것이 되어 재판관은 사퇴해야 되었다. 이런 규칙은 자백 이후의 처형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즉, 사형수와 사형 집행인의 관계 역시 결투 및 대결의 관계로써, 만약 사형 집행인이 기술상의 실수로 사형 집행에 실패하게 되면 그가 진 것이 된다. 사형수는 느닷없이 극적으로 사면되고.
“고전주의 시대의 고문에 있어 우리는 시험의 방법과 동일한 메커니즘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진실을 결정지을 신체를 대상으로 한 시험이다. (...) 고통, 쌍방의 대결, 진실 (...) 이러한 3요소가 공동으로 용의자의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다. ‘고문’에 의한 진실의 탐구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죄인의 고백을 공공연히 노정시키는 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전투이자 관례에 따라 진실을 ‘생산하여’ 적을 제압하는 한쪽의 승리이다. 자백시키기 위한 고문 속에는 조사의 요소도 있지만, 결투의 요소도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고문에는 이미 ‘신체형’으로서의 처벌적 요소가 이미 들어있었다. 재판도 안 한 상태에서, 진실이 아직 도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벌써 고문이라는 징벌이 적용되고 있는 것. 여기서 고문은 죄를 자백 받고 형벌을 내리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형벌이다. 이 이상한 고문의 역설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분적인 일부의 증거만을 가진 용의자 역시 징벌의 마땅한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혐의’가 이미 ‘죄’였고 처벌 대상인 것. “18세기에 사법상의 고문은 진실을 생산하는 의식이 처벌을 부과하는 의식과 병행해 나가는 그러한 기묘한 경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신체형에서 심문당하는 신체는 징벌의 적용 지점이자 진실 강요의 장소이다.”
3 신체형은 신체 훼손과 죽음이 일상화되어 있던 사회에서, 노동력이 별다른 효용성이나 상품 가치를 갖지 않은 사회에서, 빈발하는 내란과 그에 대해 권력을 과시하려는 국왕이 존재하는 군주제 사회에서 가능했다. 이 시대의 권력은 “죄인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물리적인 과시행위를 통해 더 고무되고 강화되는 권력, 스스로 무장된 권력임을 내세우면서 명령체계가 군대체제의 기능과 다를 바 없는 권력, 관계의 단절이 생기면 모욕감을 주고 보복심을 불러일으키는, (...) 독특한 과시행위의 화려함을 통해서 자신의 효력을 계속 쇄신시키기를 모색하는 권력, 과잉권력으로서의 자기의 실상을 의식행사를 통해 화려하게 과시함으로써 활력을 다시 얻는 권력”이다. (이 시기 권력의 방식은 뭔가 느슨하고, 덜 교묘하고, 허술하고, 부끄러움 없고, 단순하고, 노골적인 듯.)
그러나 19세기 초에 신체형의 거창한 구경거리는 점차 사라진다. 애초 권력의 과시를 위해 거행되던 행사에서 오히려 범죄자가 영웅시되고, 민중이 이상한 연대의식을 형성하면서 폭동과 난동이 일어나고, 처형장이 졸지에 카니발 같은 축제의 양상으로 변질되면서 권력자가 농락당하는 역설적 상황이 빈발했기 때문. 공개적인 처형의 점차적 소멸과 때를 맞추어 등장한 것이 범죄소설이다. 범죄는 이제 예술로 승화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 납득할 수 있는 형식으로서 수용되었던 것이다. 범죄소설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이 처벌 그 자체보다, 죄의 자백이나 신체형의 집행 그 자체보다, 범행의 진실을 찾는 탐색, 수사, 범인-수사자의 지력 싸움으로 이동. 그에 따라 범죄자의 영웅시 풍조도 소멸.
4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생산력이 발달하고, 생활수준의 상승, 부와 재산의 다양화, 소유권의 위상이 높아지고, 유혈 범죄보다 소유권에 대한 분쟁과 비행이 증가하면서 치안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등 이 모든 현상들이 권력의 전략의 변화를 야기함. 프랑스 혁명 이후 단행된 사법개혁들은 처벌에 대한 권력의 ‘경제학적 전략’을 보여준다. “범죄법의 개혁은 처벌권의 재조정을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재조정은 처벌권을 보다 규칙적이고 보다 효과적이고 보다 지속적이게 하며 또한 그 영향력이 보다 세밀하게 구석구석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요컨대, 처벌권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을 절감하고 (...) 정치적 경비를 줄이고 (...) 처벌권의 모든 성과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 형벌제도에 관한 새로운 법이론은 처벌권의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18세기 이전의 사회는 쓸데없이 중층적인 재판의 심급, 관습적인 위법행위와 그에 대한 불가피한 묵인, 처형장에서 죄인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한 잔혹성과 그에 따른 폭동 등 처벌의 전략과 기술면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낭비와 남용의 체제’였다. 혁명 이후 부르주아지 개혁가들은, 기존에 서로 견고한 짝패를 이루어 비효율의 체제를 구성하고 있었던 (1)군주의 초권력과 (2)위법행위를 일삼는 하층 권력, 이 둘 모두와 싸우면서 형벌체제를 효율성과 경제성의 체제로 개편한다. 혁명 이후 신체형이 소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신체형이야말로 군주의 무제한적 권력과, 항상 발생하기 마련인 민중의 위법행위(처형장에서의 폭동)가 뚜렷이 결합되어있는 형상이었기 때문.
더불어 신체형의 소멸은 전사회적인 인도주의적 요청에 의해 가능했다. 사람들이 범죄자에게서도 ‘인간’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 군주의 복수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한되어야 할 인간은, 교정하고 변화시켜야 할 인간이며, 학문적으로 다루어야 할 인간이기도 했다. 사실상 형벌체계가 새롭게 강조하기 시작한 ‘인간성’이란, (1)군주의 초권력과 (2)위법행위를 일삼는 하층 권력 이 모두에 제한을 두기로 한,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새로운 처벌 제도에 부여된 도덕적 정당화의 형식임. 새로운 권력기술의 등장과 신체형의 소멸, 그리고 휴머니즘 담론의 대두- 권력과 지식의 상호 지지효과를 보여주는 일단. 프랑스 혁명 이후 실시된 행형 개혁을 계기로 권력의 작동은 한층 더 섬세하고 광범위해진다. 경제적 정치적 비용이 절감된 보다 효과적인 관리방식과 기술론이 정립됨에 따라 권력의 그물망도 촘촘하게 확산.
5 개혁가들에 의해 단행된 사법개혁에서 처벌의 목표는 더 이상 제압하는 군주의 권력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 이제 처벌은 미래의 범죄 재발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 질서를 강화하고 무질서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노리는 처벌 기술이 모든 범죄에 적용됨. 이러한 처벌기술이란 구체적으로 (1)"범죄를 강행하기보다 형벌을 받지 않게 되는 편이 계산상으로 약간 나은 이익을 갖는 정도"로 형벌의 분량을 최적화시키기. (2)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에 따른 고통을 받으리라는 관념, 즉 범죄에 상응하는 표상을 정신에 각인시키기. (3)형벌이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들, 즉 잠정적 범죄자들에게도 가시적 학습의 효과, 계도의 효과, 선전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만들기. (4)모든 범죄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처벌에 있어서 완벽한 확실성과 공정성을 보여주기. (5)범죄와 각각의 범죄에 대한 처벌은, 기본적으로는 린네의 식물분류표처럼 세밀한 표상체계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새롭게 부상한 ‘휴머니즘’ 정신에 의거, 때때로 개인의 처지를 고려하여 형벌을 가중하기도 하고 경감하기도 한다.
6 혁명 이후 사회에서는 범죄와 범죄자 모두 과학적 '객관화'의 대상이 된다. 범죄자는 광인처럼 우리가 인식하고 탐구해야 할, 우리와는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고, 범죄는 공통적인 규범에 따라 객관화시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 된다. 특히 범죄는 ‘인간에 대한 권력 행사의 일반적인 조제법’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죄-처벌의 대응관계에 따른 일람표, 범죄-처벌의 기호 체계에 따라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분류되고 처리되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 범죄-처벌의 객관적인 표상체계가 각인된다는 것은 정신에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적 권력 효과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임. 아울러 범죄-처벌의 관계가 표상의 기호 체계가 되면서 범죄에 따른 처벌은 매뉴얼에 따른 보편적인 프로세스처럼 인식되고, 권력은 자신의 모습을 구태여 드러내고 과시할 필요가 없어진다. 낭비를 줄임.
7 과거 신체형 시대의 '감금'은 합법적 형벌이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서 행사되는 자의적이고 임시적인 처리 방법의 하나였다. 그러나 혁명 이후 권력의 중점적인 전략이 신체형이나 사법적 판단보다도, 범죄자를 '교정'하는 것으로 변화하면서, 이제 감금은 범죄를 '치료'하여 순응하는 주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으로서 제도에 편입되어 행정적으로 엄격하게 관리되기 시작한다. 6에서 말했듯이 근대의 권력기술은 ‘처벌’ 자체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구태여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처벌 이후 감옥에서 이루어지는 교화 과정에서는 권력의 치밀한 작용이 가해진다. 죄인의 신체와 시간이 세심하게 장악되고, 모든 권위와 지식의 체계가 동원되어 죄인의 동작과 품행을 단속한다.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강제력에 의해 훈육, 훈련, 조립, 조련, 개조되는 신체. 죄인에게 감행되는 권력의 ‘정형수술’. 이 모든 교정술을 작동시키는 권력은 사회 자체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자율적인 지배의 성격을 갖는다.
8 ‘규율’(discipline)은 원래 종교계에 기원을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금욕적인 생활의 유지, 수련 및 구도 활동을 위해 고안된 종교적 계율이 아마도 규율의 시초였을 것.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한 보조수단으로서의 규율은 점차 ‘신체와 시간에 관한 정치적 기술’의 한 요소로 편입되어 복종하는 신체를 생산해내는 데 적용된다. 고전주의 시기인 17~18세기를 거치면서 규율은 사회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제 규율은 학교, 기숙사, 군대, 병원, 공장 등의 다양한 권력 장치 속에서 인간의 신체에 행해지는 권력의 기술이 된다. “인간의 신체는 그 신체를 파헤치고 분해하며 재구성하는 권력 장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의 ‘권력의 역학’이기도 한 ‘정치 해부학’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 규율은 (유용성이라는 경제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 신체의 힘을 증가시키고 (복종이라는 정치적 관계에서 보았을 때는) 동일한 그 힘을 감소시킨다. 간단히 말하면, 규율은 신체와 힘을 분리시킨다.”
규율은 폐쇄성을 갖는다. 자체적으로 닫혀있는 특정 장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규율. 뿐만 아니라 규율은 유연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특정 장소 안의 공간을 분할하고 재구성한다. 또 각각의 세분화된 공간에 개인을 배분, 배치하고, 개별화된 신체를 각각의 생산기관과 연결시킨다. 신체가 저마다 완전히 관리-파악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배치-연결되면, 개인 단위로 업무 능력, 신속성, 숙련도 등의 분석, 평가, 기록이 용이해진다.
규율사회에서는 온갖 종류의 ‘서열’이 질서를 만들어내는 척도가 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나이, 성적, 키에 따라서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공간이 편성된다. 이렇게 편성된 공간은 “개개인을 작은 단편으로 절단하고, 또한 조작 가능한 관계를 수립한다. 그리고 자리를 지정하고, 그 가치를 명시하며 개개인의 복종뿐 아니라 시간과 동작에 대한 최상의 관리를 확보한다.” 서열화와 더불어 규율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일람표다. 분류, 통제, 관찰, 검열, 기록, 분석 등을 위한, 권력의 기술이자 지식의 방법으로서의 일람표.
9 규율 및 훈련은 ‘신체’와 ‘시간’에 관한 권력의 정치적 관리 기술이다. (1)규율을 통해서 신체는 생산수단과 효과적으로 결합된 동작을 내면화하게 되고, 특정 작업을 영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신체로 태어난다. 신체와 생산기계와의 유기적 접속. (2)규율은 신체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지배한다. 개체의 시간 관리 및 활용을 강화. 권력이 시간을 활용, 관리, 통제하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임에 따라 완성으로 향해가는 직선적 시간 개념, 진보의 개념이 출현. 시간성 속에서 단계적으로, 연속적으로, 생성-축적-성장-완성되어가는 개인, 역사, 사회에 관한 담론들. 복종의 새로운 기술에 호응하는 진보-진화의 개념. 권력과 지식의 상관적 운동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일단.
10 규율은 신체를 배열-배치하고, 각각의 신체의 시간을 추출하여 축적하는 기술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각각의 힘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도록 유기적으로 조립, 조합하여 효율적인 장치를 만들어내는 기술이기도 하다. 신체들 간의 위치, 간격, 질서, 일사불란한 움직임 등을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하는 것, 그러한 힘의 조직, 조합에 의해 개별적 노동력들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로 창출하는 효율적 생산 장치를 구성하는 것이 규율의 관심사.
11 이러한 규율의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감시(예전의 권력은 드러내고 으스대는 권력이었지만, 이제는 베일에 싸인 은밀한 권력이 됨. 예전과 달리 이제 ‘다스리는 자’는 보이지 않고, ‘다스려지는 자’만 보인다. ‘감시’에 의해 끊임없이 드러나고, 추적되고, 포착되고, 관리되는 신체. 판옵티콘 사회.) 와 규범화(규범적 판단. 끊임없이 개별적 차이들을 찾아내어 미시적인 처벌을 가하고 규격화하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으로서의 규범화), 시험(감시와 규범화 모두에 관련된 형식으로서 권력과 지식의 중첩을 보여준다. 시험은 객체화된 개인들의 자료를 축적하여 지식화한다. 근대의 인간과학은 인간의 활동을 객관화시켜 분석하고 체계화한다는 점에서 시험이라는 규율 권력의 기법이 학문적 결과물로 완성된 것. 시험을 통해서 신체는 상징계에 등록된다. 신체는 권력이 포획한 하나의 사례로서 분석되고 평가되고 측정되고 기술되는 자신, ‘객체화’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권력의 작동 속에서 규격화된 자신의 모습을 내면화하는 식으로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면서 권력에 예속된다.) 등의 새로운 권력의 기술, 새로운 권력의 행사 양식이 도입된다.
이로써 신체는 ‘개인화’된다. 개별적인 법적 주체의 계약에 의한 결합이라는, 루소를 위시하여 대두한 이 시기의 사회계약설은, 위와 같은 권력의 새로운 전략이 관철된 하나의 ‘효과’로서, 또는 효과를 생산해내는 ‘담론 장치’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권력과 지식의 유착을 보여주는 일단. “사실상 권력은 생산한다.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고, 객체의 영역과 진실에 관한 의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지식은 이러한 생산의 영역에 속한다.” 담론을 낳고, 지식을 구축하고, 쾌락을 유도하고, 역학적 운동을 발생시키는 그 모든 적극적인 메커니즘으로서의 권력.
12 규율 방식의 발전은 인구 증가(=일탈자의 증가, 무질서의 증가)와 생산기구 증대의 상호관계를 조절해야 할 사회적 필요에서 기인한 것. 규율은 ‘선취-폭력’이라는 군주제 시절 권력의 낡고 비효율적인 원칙 대신 ‘부드러움-생산성-이익’의 원칙으로 적용되는 권력의 새로운 기술이다. 규율은 권력의 행사에 지출되는 비용을 보다 아끼고, 최소의 알뜰한 노력으로 권력의 효과가 최대한 파급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전처럼 화려하게 생색을 내면서 집단 다수 위에 군림하지 않고, 대신 조용히 그리고 샅샅이 신체의 가장 내밀한 영역까지 계획적이고 교묘하게 스며들어 빈틈없는 위계질서망을 확정하고(=권력의 미시물리학), 그렇게 집단의 이용효과를 증대시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발휘.
13 계몽주의 시대는 양면성을 가진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계약과 평등주의적인 법률, 합리적인 대의제도에 의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면에는 신체의 복종을 요구하는 불평등하고 불균형적인 규율의 체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것. 명시적인 법률(거대 권력)의 이면에서 혹은 사이사이에서 그것의 외설적 보충물처럼 기능하고 있는 규율(미시 권력). “규율은 그 메커니즘에 있어 하나의 ‘대항적 법률’이다. 또한 근대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법치주의가 권력 행사에 한계를 부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도처에 확산되어 있는 판옵티콘 감시체제는 법률의 경우와는 반대로 권력행사에서, 권력의 불균형을 지탱하고, 강화하고, 다양화시키며, 부과된 한계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거대하면서 동시에 미세한 장치를 작동시킨다.”
14 사회 안에서 감옥은 학교, 공장, 군대 등 규범화 권력을 행사하는 일련의 모든 장치들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감옥이 다른 장치들과 다른 점은 규율의 강도가 좀 더 세다는 것 뿐. 한편, 감옥의 목표는 개심-개조-교화이기 때문에, 감옥은 판결을 수정하는 권리를 갖는다. 즉, 감옥 안에서 죄인의 변모의 정도에 따라 형기가 개별적으로 가중되거나 경감된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병세의 정도에 따라 투약의 중단 혹은 지속을 결정하듯이.
이 점은 확실히 근대 규율 사회에서 흥미롭게 관찰되는 특이적인 광경이다. 형기를 수정하는 척도가 범죄자의 법률 위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감옥에서의 품행과 태도를 근거로 한다는 것. 형벌의 실질적인 조정에 있어서 정작 사법상의 심급은 아무런 권한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 법률 위반행위가 아니라 위반 이후의 행위를 근거로 조정에 들어간다는 것. 사법부의 판단이 아니라 교정담당관들의 판단이 형기의 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의학으로 빗대면, ‘진단’과 ‘치료’가 다른 심급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물론 형벌체계에서 보다 중점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영역은 '치료'의 영역이다. “법원의 평가는 ‘예단을 내리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행위자의 도덕성은 ‘시련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 흔히 병원이 병을 키운다고 하듯이, 다시 말해 병원이 치료의 영역에 인간을 점진적으로 예속시킴으로써 존속하듯이, 예전에는 질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병원 권력의 무한한 ‘의학에의 욕구’에 의해 의미부여를 거쳐 질병으로 새롭게 인식되듯이, 병원이 병을 척결하기 위해서 생겨난 게 아니라 사실은 병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생겨난 기구이듯이... 감옥도 모든 면에서 마찬가지다. 감옥 역시 위법행위를 도안하고, 범죄와 비행을 발명, 생산해낸다. 감옥 역시 병원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처벌에의 욕구’를 보여주지만, 비행과 범죄는 영원히 척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옥은 수감자의 본성을 폭력적으로 억누르고, 권력의 남용과 독단적 행정을 통해 분노와 불신의 감정을 조장하는 등 ‘교정’과는 동떨어진 관리 방식을 보여준다. 까닭은 교화의 실패야말로 감옥이 지속적으로 운용되기 위한, 지속적으로 처벌의 욕구를 펼쳐 보이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감옥체계는 (...) 비행자들을 교정하기 위한 계획과 비행의 기반을 확고하게 하는 기제를 똑같은 형상 속에 결합시킨다.” 행형의 목표가 영원히 달성되지 못함으로써 존속하게 되는 감옥체계.
사실상 징벌은 범법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범법행위들을 구분 짓고 배열하고 궁극적으로는 ‘활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형벌제도는 위법행위를 정비하고, 관리하고, 이용하는 권력의 방식이다. 그런 방식이 유지되는 까닭은, 그것이 어떤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형벌제도를 매개로 한 차별적 위법행위 관련 전체가 지배 기제들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지젝 식으로 말하면, 감옥은 권력의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은밀하게 존속해야 하는 외설적 보충물들을 위해 마련된 장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비행-처벌-감금-재생산된 비행의 악순환’은 어디에 활용되는가. 그러한 지속이 관철하려 하는 근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형벌제도가 사회에 발휘하는 생산 효과’는 무엇인가.
(1)형벌제도는 위법적인 실천 영역을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범죄자를 잡아가둠으로써 사실상 범죄를 용인하고, ‘금지된 실천’을 유지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사회는 비로소 위법적이지만 꼭 취해야 할 부정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윤락, 무기밀매, 마약밀매 등. (2)형벌제도는 또한 “권력의 행사로 인해 권력 주변에서 초래되는 위법행위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비행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권력의 관철을 위해서는 때로 불법도 불사해야 하므로 그때를 위해 형벌제도 필요. 예를 들어 철거 때 용역 깡패 동원하는 경우. (3)형벌제도는 범죄자를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범죄자를 다시 잡기 위해서, 전사회적 감시활동을 정당화시킨다. 비행자들을 통해 사회의 전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구성하게 되는 것. 감시는 감옥과 짝을 이루어서 가능. (4)범죄는 범죄가 저질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은폐한다. 범죄라는 반항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 원인인 상층계급의 비행(하층계급에 대한 착취와 강탈 등)을 은폐한다. 정작 부유층의 비행은 법률에 의해 용납된다.
비행자, 범죄, 경찰, 사법부, 재판관, 감옥, 교정, 교화 등 이 모든 언표들은 하나의 계열을 이루어 '통제장치'의 구성요소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경찰과 범죄자는 '단속'이라는 중계장치를 통해서 서로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상의 통속극'의 지속을 위해서, 치안이라고 하는 권력의 놀이의 지속을 위해서 경찰과 범죄자가 서로 협동하고 야합하며, 공조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 통제장치의 작동 속에서 ‘비행’은 마치 ‘자본’처럼 끝없이 창출되고, 창출된 비행은 다시 장치에 투입된다. 끝없는 생산운동, 장치의 끊임없는 운동을 위해서.
16 “감옥에서 인간과학이 유래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러 인간과학이 형성될 수 있고 인식구조에서 모든 대변동 효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과학이 특수하고 새로운 권력 양태, 이를테면 신체에 관한 어떤 정책, 다시 말해서 축적된 사람들을 순종적이고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어떤 방법에 의해 유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법으로 인하여, 권력관계 안으로 지식의 명확한 관계를 끌어넣는 일이 필요했고, 예속화와 객관화를 교차시키기 위한 기술이 요구되었으며, 개인화에 따른 새로운 절차들이 구성될 수 있었다. 감옥의 구조는 인간과학의 등장을 역사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그 권력-지식의 한 골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