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의 극한을 체험해볼 수 있는 분야 가운데 하나로 춤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로등불 아래 모여들어 생명을 내걸고 광란의 군무를 추는 나방들처럼 춤판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정신없이 황홀해질 수 있다. 거역할 수 없는 반대 급부의 명제로서, 황홀은 어김없이 숨막히는 허무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지만. 그러나 황홀이 되었든 허무가 되었든, 춤판에서 느끼는 극도의 감정들은 독서를 통해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경지의 체험인 것 같다.

 

활자의 세계가 극지방의 풍광처럼 날카롭고 정적인 반면에, 춤판은 공허조차도 열대의 기후를 닮았다. 춤판에서 발원하는 정서는 그것이 어떤 종류가 되었든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 에밀 시오랑과 앙드레 지드와 전혜린조차도 춤판의 세계에 비하면 차가운 활자로 박제되어버린, 고운 자태로 굳어버린 정념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구두점과 서술형의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절규도, 환희도, 비합리성도, 광기도 가차 없는 동결건조의 과정을 겪게 되고 마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만지면 만질수록 부수어지고 마는 마른 낙엽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사람과 맺은 관계이든, 지난날 알 수 없는 열기에 사로잡혀 광적으로 쌓아 올렸던 모종의 내적 세계이든, 추억이든, 장소든... 나에게는 그 중 하나가 아무래도 춤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붉게 이글대는, 혹은 물기를 머금고 살아 날뛰는, 오로지 춤판에서만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었던 생명과 격동의 기운을, 지킬의 가면을 벗어던진 하이드들의 성난 축제를, 육신의 전부를 제물로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고귀하게 느껴졌던 그 디오니소스적 열정을, 이제는 이렇게 골방에 엎드려 등 굽은 노파처럼 끼적대고 있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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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5-08-20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스윙에만 국한시켜야 할 것 같다. 탱고는 좀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