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 시간의 숲에서 고대 중세 근세의 문화영웅을 만나다
최정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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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는 ‘트릭을 부리는 자’, ‘기쁨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칼 융의 꿈 이론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원초적 상징들 가운데 하나다. 트릭스터가 반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심리학적 삶에 있는 반항적 에너지로서, 그는 언제나 기존상태를 부인하거나 의문시하고 잘 돌아가는 체제에 제동을 걸고 심지어는 한창 승리감에 차 있을 때조차도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들을 비웃고 미래의 재난을 예언하길 즐긴다. 그는 아무런 분명한 도덕률도 갖고 있지 않고, 무너뜨리고 조롱하고자 하는 충동 외에는 어떠한 일관된 규약에도 매여 있지 않다.

 

라고 구글에서 만난 한국게슈탈트심리치료연구소 안진봉 씨는 말하고 있다. 트릭스터는 르네상스 시절 배타고 떠돌아다니다 17세기에 일시에 수용소에 감금되어버린 푸코의 광인들과도 일치하는 캐릭터다. 그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제의의 희생물이고, 콜린 윌슨이 말하는 아웃사이더이며,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우리의 향락을 절도해가서 불가해한 과잉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기도 하다. 오늘날 의학적 분류에 따르면 경계성 인격 장애 환자들도 트릭스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칼 융을 비롯한 과거 학자들은 트릭스터가 인간 정신의 열등한 면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경시했으나 최근의 학자들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인 오디세우스와 프로메테우스까지도 트릭스터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 보다 깊은 애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도 트릭스터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장난꾼 트릭스터는 규칙을 깨어가는 방식으로 새로운 규칙을 정립하며 장을 확장해간다. 그는 항상 고픔에 시달리며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누구나 한시적으로 주어진 규범의 한계를 넘고자 할 때는 트릭스터가 된다. (...) 웃음과 기쁨을 가져오는, 정의되기 힘든 그는 왕이자 광대이며, 모자람이자 과잉이고, 웅변가이자 은둔자이고, 현인이자 바보이며 (...) 방랑자이자 혁명가이다. (...) 특정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 경계인이며, 항상 길을 떠나는 여행자이고 (...) 한계선에 선 유목민이다.”

 

경계인이자 주변인. 농담으로 규범을 깨버리는 자. 장난치고 웃음짓게 하는 희생양. 미숙하면서도 교활한 영웅. 그물망에 걸려들기는커녕 그물의 조직을 변형시켜버리는 불온한 미학의 창조자. ‘포획되지 않음’이 그 존재의 유일한 본질인 자. 영원한 결핍이자 영원한 잉여인 '대상 a'의 신화적 원형. 탈주하는 욕망... 이쯤되면 가히 사표로 삼을 만 한 미래적 인간의 전범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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