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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문화비평은 계몽을 재계몽하는 전략이다. (...) 문화비평은 계몽 이후 그 계몽의 물화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 실증적 논박에만 익숙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공론장에서 울퉁불퉁하게 불경한 상상력을 삽입하는 사유들은 저널리즘적 사유로 계몽되어 있는 독자들을 재계몽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재계몽의 작업은 (...) 섬광 같은 "충격의 사유"를 조장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p.19~20
그렇다면 그래, 이것은 문화비평이다. 저돌적인 제목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날 선 지성은 나 같은 이에게도 당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주는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적인 것을 관리하고 배제하기 위해 발명된 공동체적 도덕성의 구현물'로서의 대중문화를 읽어내고, 그 읽기에서 일상에 파묻혀 있는 정치적 사유의 계기들을 찾아낸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근대세계의 가치체계 내면화가 이제 막 진행되고 있는 단계인, 즉 ‘형식’이 아닌 ‘내용’에 있어서 근대국가로의 도약의 와중에 있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탈정치적 보수주의, 쾌락의 평등주의(실제로는 불평등의 구조를 용인하는), 탈권위주의(실제로는 일상의 권위주의를 용인하는), 계급 적대와 이를 무마하는 민족주의 판타지,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자본주의라는 상징질서를 준수함으로서 유지되는 ‘먹고사니즘’이라는 쾌락원칙, 반지성주의 등등의 핵심어로 요약될 수 있겠다.
드라마 소재인 불륜을 정치적 맥락으로 옮겨 자본주의 너머의 체제에 대한 타나토스적 열망으로 읽어낸다든가, 온갖 '희대의 살인마 사건'이 보여주는 이면의 욕망(절대악에 분노하기 위해, 그럼으로써 차선의 악에 물들어 있는 우리 자신을 용서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가 주기적으로 호명해 내는 서사적 판타지라고)을 꼬집어 내거나, 계급 적대를 봉합하기 위한 민족주의 판타지의 연장선상에 '신성한 가족 판타지'가 놓여있음을 명시하면서 신성 가족 판타지에 근거한 일련의 사회적 사건들이 역설적이게도 민족의 이름으로도 통합될 수 없는 계급갈등의 지점을 가시적으로 지시하고 있다는 지적, 낸시 랭의 존재론적 역설을 얘기하는 대목 등 신선하고 명쾌한 통찰에 빠심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혹시 '나꼼수'에 대한 멘트도 있지 않을까 하고 뒤늦게 저자의 블로그에 찾아가 봤다가, 윽, 완전 할퀴어 놓은 글을 읽었다. 내가 그 글에서 갑자기 또 하나의 새로운 '모두까기 인형'의 출현을 예감했다고 한다면, '향락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대중'의 알러지 반응 쯤이 되려나. 하지만 나는 나꼼수에 대한 그의 태도가 더 근엄 ‘쩌는’ 알러지 반응 같은데... 비평은 본디 엄정해야 할 테지만, 엄정함이 지나치면 통쾌함을 넘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날카로운 지성은 '무학의 통찰'이 건네는 질펀한 유머를 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만, 딱 그만큼만 좀 더 여유로워질 수는 없는 걸까. 그럼에도 어쨌든, <이것이 문화비평이다>라고 하신다면 이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