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도 절망적이지도 않게 흘러간다. 오늘도 나는 내게 주어진 배역을 순조롭게 마쳤고, 지금은 아무런 걱정 없이 편히 잠들 시간이다. 결국 나는, 사회의 요직에서 권력을 발휘한다거나 예술적인 사업에 골몰하며 창조적인 욕망을 분출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대신 소시민적이고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다행임과 동시에 불행히도 나의 직업은 성실성과 책임감 그리고 약간의 인내심 말고는 내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마치 정략결혼으로 만난 부부 사이와도 같아서 뜨거운 애정은 없으되 서로에게 적당히 예를 갖추며 평화롭게 지낸다. 환희와 열락과 성취감으로 매순간 가슴이 벅차지는 못하지만 딱히 원망과 불만을 품어야 할 이유도 없는 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자려고 누웠으면 부득불 찾아드는 이 야릇한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순조롭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복병처럼 숨어 있다 문득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드는 이 기분의 정체는. 끊임없이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설레게 만드는 이 알 수 없는 기분을, 도저히 추스려지지도 길들여지지도 않는 이 기분을 나는 오랫동안 무슨 병균처럼 품고서 조마조마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일상에 충실해도 이 이상한 기분은 결코 박멸되지가 않는다. 어쩌면 병균이 아니라 차라리 나의 세포의 일부인지도 모를 그것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허기에 시달리게 만들고, 평화로운 일상을 저주하게 하고,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도 어디로 분출해야 하는지도 모를 증오와 불만을 품게 만든다. 모든 단정하고 정숙하고 순조로운 것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 깊은 곳에서 배반하도록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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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2-03-25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병 아닐까요

수양 2012-03-25 20: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