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예전보다 내 일을 좀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일에서 단순히 재미나 흥미로는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일에 책임을 느끼고 그 일에 보다 성실하게 매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일이 때로는 자기 탈각과 소외를, 치욕과 비참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자신의 일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확신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아니, 인간이라고 일반화시킬 것도 없이,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나는 나의 직업이란 것이 점차 그런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얘기를 조금은 수줍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좀 더 성심으로 일하고 싶다.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하면서도 보람이 있다. 고통 속에서의 쾌감. 쾌감 속에서의 고통. 고통과 쾌감의 이 황홀한 혼융! 서른을 목전에 두고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일을 어느 정도 '향유'하기 시작한 것 같다.


믿어지지 않는다. 불과 일 년 전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기를 적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 분석해 보건대 이 글은 필시 일시적 흥분 상태에서 읊조린 강박적 자기최면이었음이 틀림없다. 취소한다. 전적이고도 대대적으로 취소한다. 그리고 번복한다. 나는 일이 지겹다. 참을 수 없이 지겹다. 일에도 복부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밤마다 이불 속에서 그 복부의 정중앙에 칼을 찔러넣고 모퉁이를 돌아 도망치는 상상을 한다. 그러고는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출근한다. 날마다 이혼을 부르짖으며 결코 이혼하지 못하는 아낙네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특별한 요행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년 이맘 때에도 일과 일에 대한 저주의 무한반복은 계속되리라. 나는 지금 살 집이 필요하고, 집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면 일을 해야 하므로. 

 

과연 나에게 이 일이 최선일까. 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다른 일이 없을까. 그러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보고자 머리를 짜보아도 역시 여러가지 여건상 이 일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 일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인지 인류 공영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인지 어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항상 이 따위 생각을 하고 있는 통에 혹여나 자신의 직업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 앞에라도 서면 나는 도무지 떳떳하게 내 직업을 밝히지도 못하겠다. 간밤에 일의 복부를 찌르는 불온한 상상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 앞에서 나는 이미 잠정적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여간 일에 관해서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의지가 솟구쳤다가 울화가 치밀었다가 하여 도무지 감정적으로 정리가 되질 않는다. 언젠가 나도 나의 직업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을 날카로운 첫키스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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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2-03-2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는 게 직업이 되서 그런지...이런 느낌이 없네요. (여기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수양님 홧팅!

수양 2012-03-25 20:12   좋아요 0 | URL
대책없는 푸념이나 지껄였는데 이렇게 격려까지 받으니 감사하구 부끄러워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