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을 이야기하기에 정의-공리-정리-증명으로 이어지는 <에티카>의 서술 방식은 다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과연 기하학적 증명이라는 서술 형식이 신의 섭리라는 내용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오히려 첨단 그래픽 영상 예술이라든가 신비로운 시적 잠언, 혹은 오랜 종교적 수행에서 얻은 영성 체험과 같은 형식을 통해서 훨씬 효과적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강렬한 엑스터시의 상태에서 환상적으로 신을 체험하는 것보다 오히려 감정의 고조없이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스피노자식 접근법으로) 신성을 헤아리는 편이 일상에 내재하는 신성을 지속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기에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전에 수유너머에서 <에티카>를 읽을 때 고병권 선생님과 식사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다. 서가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꺼내라면 망설임 없이 <에티카>를 선택할 것이라고 하시던 선생님은 강독 시간 내내 너무나 즐겁고 신나하셨다. 선생님의 강의는 언제나 기쁨과 열정으로 가득했지만 특히 <에티카>에서 최고조였던 것 같다. 선생님의 <에티카>는 양장으로 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판본이었는데(서광사, 1990) 그렇게 너덜너덜한 책은 난생 처음 봤다. 어찌나 여러 번 펼쳐보셨는지 책 귀퉁이가 닳아지다 못해 아예 버선코처럼 들려서 가만히 놓아두어도 저절로 펼쳐지려고 막 기지개를 펴는, 무슨 정체모를 생물체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