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이하 방): 책읽기를 즐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순간이 지나면 영화를 보며 즐기거나, 등산을 하며 즐기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너무 과하면 소비성입니다. 한국의 도서관에는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는 낙이 있지요. 
주인장(이하 주): 제게 독서는 소비이자 자기계발이자 성장입니다. 영화나 등산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 같네요. 요즘에는 도서관에도 좋은 책이 많습니다. 
방: 미국 동네에는 벤자민 프랭크린의 지시로 만들어진 공공도서관에 엄청난 양의 책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 읽기란 불가능하지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책을 찾아 읽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주: 목적 있는 독서도 좋고 목적 없는 독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하면서 목적은 수정되고 만들어지고 변경되는 것이니까요. 
방: 돈, 취직, 연애를 지적 성장보다 더 중요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책에서 읽은 내용을 진지하게 토론하려는 것을 일종의 낭비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거든요. 
주: 낭비로 볼 수도 있지만 생산적 토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돈, 취직, 연애가 궁극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더 중요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방: 책 읽는 것으로 토론하는 것은 학창시절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책이 만들어진 다음의 정보는 실제로는 가치가 없는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점을 깨닫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렸지요. 
주: 동의할 수 없군요. 
방: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는 분들의 가족은 반드시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특히 부인으로 되시는 분은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 점도 아셔야 합니다. 
주: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아마 괜찮을 겁니다. 
방: 책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책에 파묻혀 살다가 실수로 몇 권의 책을 폐지로 버려버린 아내에게 매질을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거의 반복되는 이야기지요. 
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매질'을 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네요. 
방: 그리고 좀 아프시겠지만,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저는 님과 아무런 이해득실 관계가 없습니다. 그저 인생의 선배로 진심어린 충고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할뿐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책을 자꾸 찾는 것이 아닌지를. 
주: 제 직업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네요. 저는 '책 만드는' 출판 편집자로서, 책을 읽는 것은 자기계발이자 업무이자 취미이자 삶이자 이념입니다. 독서는 저의 가장 중요한 '현실'입니다. 
방: 편집일로 직업상 매일 책을 읽어야하는데 취미로 또 책을 읽는단 말입니까? 그렇게 하시면 삶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나요? 
주: 기계적/중립적 균형보다는 몰입의 극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독서에 몰입해 있을 뿐이지 삶을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  

평소에 간간이 들여다 보는 어느 다독가의 블로그에 갔더니 주인장이 방문객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라딘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결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방문객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이 대화에서 주인장은 책읽기의 소모성과 무의미성에 대한 항변으로 자신의 직업을 내세우고 있기라도 하지만, 나의 직업을 떠올려보면, 나 자신은 이런 자기합리화조차도 가당치 않은 처지가 아닌가. 나는 출판 편집자도 아니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자도 아니며 진보단체의 활동가는 더더욱 아니다. 구태여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거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을 찾아 읽어야 할 하등의 이유나 필요성이 내게는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나는 책과 삶을 철저히 분리시키게 되었다. 이를테면, 현대미술작품을 다룬 서적을 탐독하면서도 나의 이력은 결코 현대미술적(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학이 좋으면서도 내 삶은 결코 낭만주의나 리얼리즘이나 실존주의로 치달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좌파 사상가들의 글귀에 감전이 되더라도 책을 덮고 나면 그 뿐, 나를 둘러싼 이 부조리한 세계 만큼은 끝끝내 변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발칙하고 불온하고 전복적이고 도발적인 것에 탐닉하되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미로서만 지속되어야 할 뿐 내 실제적 삶은 결코 그리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 지독히도 이율배반적인 자기준칙... 어쩌면 욕망과, 그러한 욕망을 금하려는 욕망 간의 애증 관계, 이 사도마조히즘적 자기 쟁투야말로 내 삶의 행보인지 모르겠다.

독서, 특히 인문학 방면의 독서는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잠시 동안이나마 불온한 상상에 빠져들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불온한 상상은 절대로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위안이 될 뿐이다. 저 방문객의 말처럼 내게는 독서가 명백한 도피의 수단인 것이다. 독서는 내게 좌절된 욕망의 출구이며 사치스런 지적 쾌락주의에 다름아니다. 돈 쥬앙이 아름다운 여인을 탐하듯 나는 내게 지적 자극을 주는 책을 탐할 뿐이다. 목적도 없고 대의도 없이 그저 현실을 벗어나서 책을 읽는 상황 자체를 즐길 뿐이다. 방문객은 이런 짓이 실제 생활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적고 있다. 나 역시 독서 활동 일체를 작파할 정도의 통렬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일이 지나야 할 것 같다. 아직 안 읽은 책들, 탐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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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3-0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수양님. 글. 와닿네요. 혹시 제 블로그에 옮겨 놓아도 괜찮을까요?^^

수양 2011-03-0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그러면 영광이지요^-^ 저도 빵가게님 글 잘 읽고 있답니다^-^

2011-06-1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책은 다들 재미로 읽는것 아니였나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