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시리즈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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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라캉은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전개하기 위해 자주 자연과학으로부터 사례를 빌려왔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차용이 단순한 설명적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낮잡아 말했다지만, 이 책에서 지젝이 욕망의 작동방식을 양자물리학과 상대성 이론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는 대목(요는 이렇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마치 물질이 원인이고 그 결과로서 물질의 주위로 공간이 휘어진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물질이라 여기는 것은 공간의 휘어진 효과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욕망의 기저에는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낯선 괴물 같은 무언가가 있는 거 같지만, 그리고 우리는 그걸 실재라고 부르지만, 사실 실재라는 건 상징계의 균열과 빈틈이 만들어낸 효과에 다름 아니다.)을 읽다보면, 자연과학의 이론이 그저 '단순한 설명적 도구'에 불과하지만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어떤 신비한 예감이 생긴다. 어쩌면 정신분석과 현대물리학 사이에는 단순한 유비 관계 이상의, 우리가 모르는 어떤 우주적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의 가장 깊고 내밀한 영역에 자리잡은 욕망의 활동과 광대무변한 우주적 현상 사이에 이런 유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지 않은가 말이다.

 

지적 엄밀성에 대한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일반 독자의 특권을 남용하여 상상력을 좀 더 제멋대로 발휘해 보자면, 원인으로서의 대상a, 즉 결핍에 대해 민감한 사람일수록, 행성으로 치자면 질량이 무거운 행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거운 행성일수록 주위의 공간을 많이 휘어지게 하고, 왜곡된 실재를 만들어내고, 운석이라든지 먼지라든지 하는 주위의 것들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리비도가 강한 사람 역시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고(불가에서는 흔히 아상我相, 즉 '나'라고 하는 실체에 대한 고집과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만들어낸 왜곡된 세계의 허상 속에서 번뇌하게 된다고 얘기하지 않던가), 주위의 것들을 강하게 빨아들여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를 재편시킨다. 그는 부가 되었든 권력이 되었든 지식이 되었든 주변의 것들을 강하게 끌어당겨 자신의 영향권 안으로 집결시킨다. 이것은 그만큼 그가 '물질'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그만큼 '존재하려는 경향성, 발생하려는 경향성'이 강하다는 뜻일 것이다. 한편, 리비도가 강한 사람의 극단은 블랙홀에 빗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는 엄청나게 허기진, 내면은 온통 허무로 가득한 괴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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