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반복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2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뒷부분에 해당하는 일본역사의 반복 문제나 일본 문학 비평은 거의 못 읽었다. 역자는 이 부분 안 읽으면 반쪽만 이해하는 거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일본 역사를 잘 모르니 어렵고 재미도 없는 거 같다. 다만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부분인데,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근대국가체제를 표상시스템(라캉식으로 말하면 상징계?)으로 보고 각각의 영역에서 화폐와 왕을 시스템의 구멍(존재의 무無, 실재계적 순간, 의식으로부터 배제되면서도 이 의식을 지탱하고 있는 실재의 한 조각)으로 상정하는 점이나, 월러스틴의 체계 순환의 역사에서 자본과 국가의 반복강박(억압된 것의 회귀)을 읽어내는 부분은 고진의 독창적인 관점인 것 같다.

이 책에서 고진은 경제와 정치 두 방면의 역사에서 각각 결핍(구멍)을 메우기 위한 신경증적 증상으로 공황과 보나파르티슴이 반복강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맑스가 이를 포착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맑스의 저작 <자본론>과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을 각각 자본과 국가의 반복강박에 대한 분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계가 프로이트와 맑스를 만나면 무려 이런 얘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근대세계체계가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나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반복강박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고진의 말은 범상치 않게 들린다. 반복강박은 죽음충동의 표현이다. 생명충동이 근본적으로 통합과 더 큰 전체를 향해 움직여가는 어떤 구성적 힘이라면, 죽음충동은 그것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해체구성적 추동력이다. 죽음충동은 심리학적으로는 긴장을 증가시키지만(반복강박), 생물학적으로는 긴장을 감소시킨다(이화작용).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근대세계체계는 구조적 갈등과 긴장이 심화됨으로써 불쾌가 고조되어가는 체계이면서 동시에 유기체적으로는 점차 해체의 과정을 밟아나가는 체계라고 할 수 있겠다. 죽음충동의 생물학적 최종단계는 그동안의 갈등과 긴장이 풀리고 휴식과 영면이 찾아오는 '열반' 상태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근대세계체계에 있어서는 바로 이 지점이 보드리야르가 말한 내파가 일어나는 지점이자 월러스틴이 전망하는 체계의 종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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