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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ㅣ 민음의 시 165
이영주 지음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겨울밤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서 안으로, 아무도 없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차가운 칼날 같은 손잡이를 떼 낸다. 손잡이가 있으면 한 번쯤 돌려 보고 배꼽을 눌러 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볼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방바닥에 늘어놓은 축축한 냄새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버섯들이 있었는데, 잠에서 깨면 어머니는 버섯 머리를 과도로 똑똑 따고 있었다. 손잡이를 어디에 붙여야 할까. 너는 아래쪽에 서 있다. 몸속이 어두워질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는 이상한 반동.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너는 봉긋하게 솟은 버섯 같은 자신의 심장에 손잡이를 대고 안쪽을 열어 본다. 거꾸로 자라나는 버섯들이 잠에서 깨어 어머니의 머리를 똑똑 따 내고 있다. 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바깥에 두고 온 손잡이를 어두워서 찾지 못할 때, 아무도 없는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질 때, 너는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언니에게> 전문
슬픔은 상상력을 만나 유희가 된다. 그러나 그 유희에 동참하기에는, 내겐 너무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시집이었다. 빈한한 시적 상상력을 탓할 뿐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시집이지만,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언니에게>라는 시만큼은 애틋하고 애틋해서 자꾸 읽어보게 된다. 그러게, 손잡이는 어쩜 버섯같이 생겼을까. 손잡이-버섯-심장-축축한 냄새... 언어는 또 다른 언어를 상상하고, 다정하게 부르고, 불러온 혹은 불어온 언어들이 서로 찰지게 아귀가 맞아서, 서로 다정하게 이어져서, 낭창낭창한 시 한 벌이 되었다. 나에게는 이 시가 곧 "손잡이"와도 같아서, 이 시를 "돌려보고 배꼽을 눌러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보고" 하다보면 문득, 내 가장 축축하고 어두운 안쪽에 버섯처럼 피어있는, 모든 언니같은 것들을 왠지 가만히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