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서동진 지음 / 돌베개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지난 20년간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권력의 주체화의 논리, 즉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기존의 규율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를 꿈꾸는 주체의 자기형성의 논리와 겹쳐져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계발에의 의지라는 것은 결국, 보다 나은 자기가 되고픈 인간 본연의 소망, 그리고 비상과 해방에 대한 인간의 본연적 욕구와 같은 것들이 권력의 자장 속에서 마름질 당하고 가공된 형태라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진보적 희망과 자유에의 소망이 매번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변질되고 마는 것이라면, 차라리 애초에 그런 꿈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자유를 지지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어떤 종류의 자유인가 매번 날카롭게 질문해야 한다. 질문은 사유이고, 사유는 곧 새로운 자유의 가능성이다. 새로운 자유란 어떤 자유인가. 그것은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관리되는 자유, 순응적으로 변질된 자유, 기껏 자기계발의 자유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관계로부터의 호명이 불가능한 자유, 관리되고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는 자유, 외부를 사유하는 자유, 탈주하는 자유다. 새로운 자유의 정치학을 꿈 꿀 것! 이 책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가슴벅찬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은 사실상 환자한테 불치병 선고 해놓고 미안해서 보약 한 첩 다려주는 거랑 다를 게 뭔가. 저자의 제안에 따라 아무리 세계의 자명성에 질문을 던지고, 해방된 자유, 탈주하는 자유를 열심히 사유해봤자 그가 쓴 책 전체를 관류하는 푸코식 통치이론의 논리에 따르면 그 또한 결국에는 통치 권력의 전략에 포섭되어 너무나 단정한 모습으로 그리고 또한 너무나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형되고 말 것이 아닌가. 그것이 권력의 역학 관계를 벗어날 길 없는 개체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수유너머가 기성의 체제와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역시 그러한 한 전형은 아닐까. 예를 들어 수유너머의 일시적 구성원이었던 나의 경우, 수유너머를 늘 남산에 있는 무릉도원 쯤으로 여기곤 하지 않았던가. 가슴이 턱 막힐 때마다 무릉도원에 잠깐 다녀가 오금이 저려오는 온갖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로 목을 축이고 나서, 자극적인 관념들로 샤워를 하고 나서, 다시 속세로 귀환해서는 마치 별세계에서 한바탕 꿈꾸다 돌아온 듯 이전과 다름 없는 태도로 일상을 살아가지 않았던가.

그곳에서의 공부는 나의 구체적인 삶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나의 공부는, 배움을 주셨던 선생님들의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에게는 그저 출구 없는 일상에 작은 위안을 주는, 그런 신기루 같은 공부였지 않았나. 그렇다면 함부로 말해서 나 같은 이들에게 자기위안용 혹은 자기장식용 지식을 판매하는 것이 결국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수유너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역시 그곳 선생님들의 기대(내지는 최초에 그곳 선생님들이 꿈꾸었던 자유의 정치학)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 책 비롯, 푸코의 통치권력이론의 영향을 받아 씌어진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공황장애에라도 빠진 듯한 기분이 된다. 끔찍할 정도로 조화롭고 치밀한 자기 완결적 시스템. 거기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도, 불순한 종자들의 혁명도, 우연의 장난질도, 그 어떤 우발성도 들어설 여지가 없는 것이다. 푸코가 그려내는 세계는 마치 한치의 허점이나 틈새도 보이지 않는, 영원히 붕괴되지 않는, 견고한 성채 같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도저한 슬픔이다. 푸코가 말년에 주창한 자기윤리라는 것은, 결국에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 비루한 자구책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경악하고 얼마나 절망한 끝에야 비로소 호쾌하게 웃는 능동적 니힐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이 견고한 성채 안에서 우리는 과연 냉소를 멈출 수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