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2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자못 생생하게 지난날 목격했던 민중적인 삶의 고통과 비참을 증언하곤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도 민중이란 내게는 어떤 서먹한 추상이었다. 그것도 김형과는 달리, 시대의 강자로서가 아니라 영원히 고통받고 이용당하게 되어 있는 극히 비관적인 추상이었다. 만약 내게 애정이나 신뢰가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는 내가 그들 민중 위에 군림하며 누리는 계층에 끼어들게 되리라는 예측에서 오는 부채감이나 죄의식의 변형이었지, 민중 그 자체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용기있게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했던 이들에게는 죄스럽게도, 나는 차츰 심한 자기모멸과 원인 모를 부끄러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껏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소년시절의 충동적인 모험의 연장이며, 추구하는 것 또한 영광과 승리의 동참자로서 나누게 될 자랑스러운 기억 따위나 아닐까. 막연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지성의 정신적인 자위행위거나 우리도 언젠가 빼앗기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노라는, 장차 혜택 받는 계층에 끼었을 때의 변명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것이 그 무렵 이미 병적인 피로에 빠져있던 나의 결론에 가까운 자기검토였다. -p.86  

“변명을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던 소설 속 화자의 “자기검토”는 예리하게 들어맞았다. 적어도 <젊은 날의 초상>을 사랑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의 존재 자체가 오늘날 이문열이 그 어떤 정치적 망발을 일삼아도 결코 이 소설가에 대한 애정을 철회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초상>을 비롯해서 그의 많은 소설들이 나에게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고, 이 사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덕분에 나는 이문열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게 되어버렸지만.  

최근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운동권 학부생이 올린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학생이 공부나 할 일이지 왜 정치에 끼어드느냐는 어르신들의 비난에 그는 단단히 골이 난 모양인지 이렇게 적고 있었다. "나는 이문열이라는 작자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 따위 운운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기회주의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고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감히 ‘학부생’ 주제에 이문열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칠 날을 위해서 우리는 사상의 날을 벼리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부’를 실천해야 한다."

<젊은 날의 초상>은 자전소설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에서 화자는 젊은 날의 상당 부분을 저 위의 학생이 역설한 “사상의 날을 벼리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부”에 헌신하는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이문열의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치고픈" 어느 학부생의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도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었다. 흔히 '시절'은 한때라고 하지만, 어쩌면 개체로서의 인간만이 한때이며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작중 인물의 대화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묻어나는 데서 오는 근대소설적인 분위기라든가 중간중간 무협소설을 읽는 것처럼 허황되고 작위적인 대목 때문에 이 소설은 서술 기법 면에서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소설이 주는 감동은 이 모든 약점을 충분히 무마하고도 남는다. 소설 출판 당시 매캐한 교양의 숲에서 현실을 망각하게 만들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모든 비난이 꼬투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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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8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 2010-08-20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그게 참 어려운 화두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