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이론
자크 라캉 지음, 권택영.민승기.이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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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단계란 거울의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시기로,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난다. 라캉은 유아 발달 시기에 나타나는 거울단계를 나중에 ‘상상계’라는 용어로 전치시키는데, 이것은 거울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주체 형성의 양상을 단순히 발육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기적 특성으로서가 아니라, 주체가 (단계적인 성장과 상관없이) 처하게 되는 하나의 ‘국면’으로 확대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거울단계의 아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양육을 받아야만 하며 아직 말도 하지 못한다. 운동조절 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자신의 신체를 분열되고 파편화된 상태로 감각하는데, 이때 거울상은 아이의 신체에 대해 숙달된 느낌을 '예기'한다.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총체적이고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거울의 이미지에 매료된다. 거울 앞에서 아이는 객관적으로는 더없이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도 지극히 완벽한 자아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느끼는 근원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은 어디까지나 환영(이미지)에서 얻어지는 효과이기 때문에 자아와 관련된 근본적인 부조화가 존재하게 된다. ‘존재론적 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거울상과의 동일시 과정 속에서 부조화를 일으키는, 이전의 분열된 육체의 경험- 이것이 아이에게 히스테리적 억압을 가져오고, 아이는 억압에 대응하여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요새화하는 자기방어를 수행하게 된다.  

라캉은 여기서 주체의 전반적인 정신발전을 규정짓는 ‘소외구조’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몸을 잘 가누지도 못하는 자아가 강박적 자기방어 속에서 구축한 환상적 자아와 혼동을 일으킴으로써 이미지로서의 자아가가 실제의 자기 위치를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아는 이렇게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매료와 더불어 본래의 자기를 소외시키는 과정 속에서 부상한다.  

오인과 소외에 의한 (상상적) 주체의 구축이라는 상상계적 자아의 양상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보여준 고전주의 시대 대감호 현상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근대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광인, 부랑자, 걸인 등을 비롯한 비이성의(정확히는 비이성으로 상정-분류된) 무리들이 대거 격리 수용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인류 역사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거대한 상상계적 국면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없이 난해한 이 책을 붙들고 있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에 나오는 한 대목이었다. “결국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발밑에 우리가 의지할 진실한 것, 견고한 것이 과연 있는가. 산에서 사람들은 눈더미가 쏟아지는 비탈에서 갈고리 쇠가 얼음에 걸리는 것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매번 갈고리 쇠로 얼음을 찍으며 실존적이고도 운명애적인 체험을 하는 지 모른다. 그러니 얼음과 함께 굴러 떨어질 운명을 알면서도 우리는 결코 이 우스운 짓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허망한 종류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안도감과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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