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케이블 채널 QTV에서 하는 '순정녀'라는 오락프로를 거의 한 회도 안 빼먹고 열광적으로 시청하고 있다. 이 프로에서는 매 회 열 명 남짓한 여자 연예인들이 대거 출연해서 서로 순위를 정한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순위의 기준은 대략 이런 식이다. 가장 가식적일 것 같은 여자, 가장 뒷담화 심할 것 같은 여자, 가장 남자를 밝힐 것 같은 여자 기타 등등. 순위를 정하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한데,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인신공격성 발언이 쉴새없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여자 연예인이 방송 도중 성희롱에 가까운 막말을 해서 인터넷이 잠깐 들썩였다. 사람들은 그녀가 내뱉은 원색적인 막말에 대해 비난을 쏟아부었고 그녀는 졸지에 인간 말종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녀를 도덕의 잣대로 심판하기보다 차라리 그녀의 막말에 더없이 환호하는 편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좀 더 자연스러운 행동일 것 같다. 사실 비난했던 사람들 역시 이미 충분히 즐거움을 향유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방식으로 막말의 즐거움을 향유한 셈이다. 비난은 즐거움의 우회적 표현이다. 어쩌면 비열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프로를 좋아하는 까닭은 굉장히 잔인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이루어졌던 검투사들의 경기를 연상케 한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피 튀기고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환호했던 당시의 로마 시민들과 오늘날 나를 비롯한 QTV 순정녀 시청자들의 궁극적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순정녀 출연자들은 매 회 방송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처참한 막말을 내뱉으며 만신창이가 된다. 우리는 그들의 공멸에 환호하고,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대가로 출연료를 지급받는다. 아마도 그 옛날 로마 콜로세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검투사들이 받았던 급료와 비슷한 수준일 것 같다. 방송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순정녀 출연자들은 언제나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들은 존재론적 비애마저도 쿨하게 헤쳐 나간다. 검투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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