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1
샤를 푸리에 지음, 변기찬 옮김 / 책세상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푸리에가 생각하는 이상사회란, 협동농업으로 자급자족 생계를 꾸려가는 난교(亂交) 공동체다. 판타스틱하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푸리에의 농업조합 이론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주목을 끄는 부분은 역시, ‘사랑이 흘러넘치는’ 쪽이다. 푸리에는 인간의 본성이 관능적(육체적) 쾌락과 감정적(정신적) 쾌락의 균형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일방적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흔히 전자는 사회적으로 억압되기 쉽지만, 사실상 우리는 오히려 관능적 쾌락을 통해 감정을 탁월하게 고양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영혼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먼저 그는 사랑의 형식에 대해 다섯 단계를 정의한다. 

①소박한 혹은 근본적 단계: 단순한 관능적 사랑 또는 단순한 감정적 사랑.
②혼합된 혹은 균형을 이룬 단계: 관능적 쾌락과 감정적 쾌락의 균형. 법률과 도덕에 의해 합법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일반적 사랑의 형태. 일부일처제 사회. (문명사회에서는 이 단계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식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하다. 즉, 고정된 남녀 커플 관계 사이에 지배와 억압 구조가 만연하고, 권태와 불쾌, 불안감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 
③폴리가미 단계 혹은 혼합된 사랑을 여러 결합에 적용하는 초월적 단계: 일부일처제 혹은 일처다부제 사회.
④총체적 혹은 통일적 단계: 프리섹스, 스와핑, 각종 도착적 섹스, 통음난무, 난교.
⑤다의적 단계: 위 모든 단계들이 혼합된 단계. 

푸리에는 마지막 5단계야말로 사랑의 모든 형식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단계라고 말한다. 5단계 사회에서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공평하게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타락한 문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1~2단계에만 머무르도록 강력하게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사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3~4단계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미 문명에 길들여진 노예다!) 문명이 자행하는 최대의 악행을 본성의 억압으로 여긴 푸리에에게 5단계를 지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푸리에는 5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나르키소스와 프시케의 예를 들고 있다. 나르키소스와 프시케는 시(市)에서 가장 매력적인 남녀인데, 그들을 갈망하는 남녀가 그 시(市)에만 20쌍이 있다. 문명화된 법률은 프시케가 한 사람의 정숙한 남편에 속하고 나르키소스 또한 한 사람의 순결한 아내에 속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푸리에가 봤을 때 이것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을 독점하려는 비열한 이기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그는 사랑의 자유주의를 위하여 20쌍의 남녀가 나르키소스와 프시케를 성적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성적 공유는 전적으로 프시케와 나르키소스의 희생과 호의에 의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계기로 희생과 호의를 베풀기를 결심하게 될까. 푸리에는 이것이 전적으로 사랑이 넘치는 박애정신, 보편화합을 위한 자기희생정신, 정신적 순수주의에 의해 가능하리라고 본다. 박애정신으로 무장한 프시케와 나르키소스는 그들의 몸을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내맡김으로써 순교자적 영예를 얻고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특혜를 입는다. 한편 추종자들은 ‘천사 같이 고귀한’ 프시케와 나르키소스 덕분에 고결하고 성스러운 도취 상태를 맛보게 된다. 푸리에는 한 사람을 공유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사람은 두 사람, 세 사람 또는 그 이상을 공유하는 데도 동의할 수 있다면서, 인간이 좋아하는 사람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푸리에는 이 놀랄 만한 글의 서문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빈곤한 사람이 전혀 없고 모든 사람이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까지도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조화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루 일과 중 일정 부분을 열정에 바친다. 그래서 사랑은 조화 속에서 핵심적인 활동이 된다. 사랑은 나름의 규범, 법원, 궁정, 체제 등을 갖고 있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 <숏버스>가 기억났다. <숏버스>야말로 성적 박애주의를 몸소 구현하는 푸리에주의자들의 영화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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