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일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일도 결정적으로는 모두 재미가 좌우하는 것 같다. 관심과 집착, 싫증과 무관심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발생과 소멸의 한 주기- 그것을 내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라 한다면 그러한 사건의 국면을 좌우하는 요소들은 결코 윤리나 정의, 명분, 강제, 책임감, 자기 절제 따위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차라리 껍데기이고 둔갑이다. 그러니까 기표 같은 것들이다. 기의를 잊어버리고 기표만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될 때, 내 안에서는 극렬한 반동 현상이 일어난다. 집착을 끊기 위한 집착. 명분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명분. 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강제. 반동과 재반동이 거칠고 게다가 비본질적이기까지 한 격랑이라면, 재미는 격랑 아래의 도저한 흐름이다. 그것은 사건을 좌우하는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심급이다. 재미난 것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내 안에서 어떤 새로운 발생이 일어난다. 그리고 내 안의 촉수들이 일제히 발기하는 바로 그런 순간에 비로소 나는 어떤 강렬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좀 더 재미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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