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에 갓 입사한 친구에게 재무 설계 상담 같은 걸 받았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수다를 좀 떨었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새로운 종류의 슬픔에 대해 얘기했다. 터져 나오거나 줄줄 흘러내리는 슬픔이 아닌, 우물 속에 두꺼비처럼 앉은 슬픔에 대해. 딱지처럼 굳은 슬픔에 대해. 바닥에 엎드려 가만히 뺨을 대었을 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슬픔에 대해.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건포도가 된 게 아닐까. 우린 예전보다 작고 조글조글해졌지만 그만큼 달고 진해진 게 틀림없어. 그런데 건포도는 그 옛날 캘리포니아 뙤약볕 아래서 무슨 결심을 품었길래 그렇게 새까매졌을까. 막 공상에 잠기려는데 그녀가 내게 노후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한쪽 벽을 책장으로 짠 살롱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 책도 읽을 수 있고 사람들이랑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오랜 시간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어도 이제까지 내 경우에 삶의 방향을 좌우한 것은 책보다는 인물, 인물보다는 사건의 체험이었던 것 같단 얘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결정적인 책, 인물, 사건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어야 하리라는 얘기도. 살롱을 꾸미고픈 까닭 역시 살롱이 다양한 사건의 현장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독서와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밀도 높은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살롱을 차리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목돈을 마련하려면 지금부터 다달이 체계적으로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였는데 갑자기 불상사가 생겼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반쯤 시공을 마친 살롱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살롱은 3분 정도 지나 깨끗하게 전소했다. 요즘 들어 '돈'이라는 외마디 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으로 습격해들어와 온갖 낭만적 상상에 죄다 불을 싸지르고 있다. 슬프다. 이 또한 새로운 종류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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