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놀트 하우저는 예술사를 자연주의와 형식주의가 대립해온 지난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 대립은 철학적으로는 유명론과 실재론, 정치적으로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종교적으로는 현세적인지 내세적인지 하는 경향, 사회적으로는 상업이 발달하거나 자유가 허용되는 정도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책에서는
 
(1)추상 개념이 전혀 없었던 구석기 시기의 사실적인 표현주의가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양식화되고, 통일적 조직과 피안의 세계관이 발달했던 이집트 전제왕권 시기에 이르러 극도로 추상화 되는 경향(이집트에서도 왕권의 흥망에 따라 자연주의적인 경향이 간혹 나타나기도 하지만) 자연주의양식으로 발전하기까지. (2)크리티섬의 자유분방했던 예술사조가 그리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딱딱한 아르케익 양식으로 변모하고,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는 보다 자유롭고 웅장하게 발전하여 이윽고 문명의 전성기 시절 우미양식을 거쳐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기까지. (3)로마문명이 쇠퇴하고 그리스도교 시대와 함께 시작된 극도로 추상화된 양식이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 잠시 절충주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세적’이었던 교부철학의 시대에 비자연주의, 형식주의, 기능적인 특징을 지닌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일관하다가, 로마네스크 후기에 이르러 스콜라철학의 발달과 궤를 맞춰 점차 역동적인 모습을 띄더니, 11세기 이후 도시와 상업이 서서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정신주와 현세긍정적인 감각주의가 교착된 고딕양식으로 발전하기까지(번호는 내맘대로 매김)

를 죽 훑고 있다. 선사시대에서 중세 이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마다 조형예술가의 사회적 입지가 약간씩 달랐다는 점, 같은 예술가라도 문인과 조형예술가의 사회적 입지의 차이가 매우 컸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 즉, 선사시대의 조형예술가는 일종의 특수능력보유자로서 나름의 대우를 받다가, 노동을 천시했던 그리스시대에는(시인의 원조격인 소피스트들이 당대에 받던 대우와는 달리) 굉장히 무시당했다가, 헬레니즘 시기에는 플로티노스 사상의 유행으로 일시적으로 쬐끔 천재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중세 후기에 이르러 개인 공방을 차리고 예술품을 독자적으로 주문 생산할 때까지도 여전히 보잘 것 없었다는 것. 천재 대접은 르네상스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뤄지는데, 아놀드 하우저는 이런 현상을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체면 의식’의 소산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민족대이동시대 및 영웅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인들은 대부분 무사나 왕의 측근이었을 것이라고. 물론 이들은 후에 왕궁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화되고 비정규직들은 방랑시인으로 전락하기도 하면서 대중 사이로 스며들게 된다. 권력층에서 나온 예술가가 시인이었다면, 민중이 배출한 최초의 예술가는 미무스(마임)인데, 말하자면 이 둘이 문학의 원류를 형성한 셈이다.

중세만의 독특한 계급인 기사 집단에 대한 부분(p.273)도 흥미롭다. 이들은 말하자면 원래 귀족의 딱까리였다가 귀족으로 승격된 부류인데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은 사실 졸부들이 졸부 티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갓 귀족된 자’의 극도로 ‘오바’하는 정신이었던 것. “기사의 계급적 이상, 귀족의 계급의식, 계급적 이데올로기는 이때부터 비로소, 그것도 바로 기사계급에 의하여 형성”되었다는 점,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도 사실은 이 기사도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는 점은 역사가 보여주는 조크라고 해야 할까. 체면과 절도, 인내와 극기, 충성과 명예 추구 등 온갖 영웅적인 덕목을 고수하던 기사계급이 경제적 합리주의, 영리추구, 계산과 절약과 흥정을 삶의 모토로 여기는 상인 계급에게 맥없이 나가 떨어지는 모습은 구한말 몰락의 길을 걷던 양반들의 처지와 영락없이 똑같다.

어찌되었든 이 기사계급으로 인해 중세만의 독특한 궁정문학인 기사도 문학이 생겨나게 되는데, “감정의 섬세성과 내면성, 사랑하는 사나이가 그 사랑의 대상인 여성을 생각할 때마다 갖는 경건한 마음, 끝나는 바가 없고 채워지지 않으며 또 한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채워질 수도 없는 사모의 정”의 끝장(!)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로맨스 문학의 원류인 기사도 문학에 대한 분석 또한 흥미롭다.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이 문학이 보여주는 “궁정적, 기사적 연애관은 정치적인 주종관계가 대(對)여성에 대한 관계로 옮겨간 것”이라고. 연애의 봉사는 곧 주군에의 봉사의 모방이며, 일종의 “정치 찬가”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후나 호족들이 전쟁에 몰두하여 종종 궁정이나 성을 장기간 비울 수밖에 없었고, 그의 부재기간에 부인이 군주의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궁정에서 봉사하는 시인들이 권력층 여성의 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 (마치 여성들의 신데렐라 판타지에 전적으로 부응하는 한국드라마처럼) 기사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더 이상화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기사도 문학의 기저에 깔린 (어찌보면 상당히 노골적인) 성적 요소를 읽어내면서, 이 문학의 저자들인 기사출신 시인의 사회적 성향을 주목한다. 즉 기사도 문학이야말로 교회의 금욕적인 계명에 대해 신흥귀족이 보여주는 반항의 한 산물이며, 인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그들의 사고방식이 여실히 표현된 문학이라는 것. “기사계급의 연애처럼 남의 부인에게 성적으로 쏠려 있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라는가 그러한 감정이 그것을 자유로이 나타낼 수 있음에 따라 더욱 더 고조된다는 현상은 종전의 종교적, 사회적 터부의 위력이 쇠퇴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신흥귀족의 등장에 의해 성적 감정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터전이 미리 마련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p.2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