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할 때면, 친구들과 나는 늘 온갖 꼼수를 써서 끝내 맨 뒷자리를 차지했다. 분단마다 뒷자리를 점거한 우리들은 만만하다고 여겨지는 선생님의 수업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책상과 함께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책상을 화장실에 숨겨놓고 학교 뒷산으로 도망가는 무리 중에 하나가 나였다. 잎사귀 사이로 아득하게 들려오는 수업 종소리란 늘 묘한 긴장과 흥분을 자아내는 것이어서 도주는 중독성이 강했다.

 

그러나 혼자였다면 결코 감행하지 못할 비행이었으리라. 일찍부터 어줍잖은 패거리 문화에 눈뜬 나는 기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소인배에 불과했다. 나의 객기는 치졸하게도 집단에 속해 있을 때만 과도하게 발휘되었다. 그 시절에는 비행으로 고무된 집단 의식이 나를 구성하는 정신적인 영역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이라는 것은 확실히 어떤, 환영을 만들어낸다. 집단 안에서 대담해진 자기 모습을 실제의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것- 소심하고 자의식이 희박한 인간에게 집단이 주는 매력이란 어쩌면 그런 환영에서 오는 도취감이 아닐까.

 

오로지 집단 안에서만 용맹하고 집단 안에서만 잔인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아이들과 함께 산으로 도망치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경험으로 미루어 나는 그들의 용맹성이 상당 부분 허구임을 확신한다. 그들의 결속력은 기실 나약하고 별볼일 없는 개별자들의 부실한 연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실로 용맹한 사람은 오롯이 홀로 존재할 때 가장 담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연대만이 비로소 웅숭깊은 울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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