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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100장면 - 가람역사 9
김형석 지음 / 가람기획 / 199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사상에 대한 소개보다도 각각의 사상을 낳은 역사적,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 개인의 일대기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백과사전식(?) 구성이라서 철학사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데다가 저자의 철학적 관점 역시 현대의 철학사조와는 다소 동떨어진 구석이 있어서 근대 이후 장면 부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저자는 이 시대를 아직 근세의 시기로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100장면의 편집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언어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소쉬르-라캉-푸코-들뢰즈-데리다로 이어지는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져있다. 대륙철학은 실존주의까지, 영미철학은 프래그머티즘을 설명하는 선에서 100장면이 끝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람기획의 백장면 시리즈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보완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마무리 지으며 서양철학적인 방법으로 한국철학도 체계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제언은 새겨들어 봄직하다. 우리도 조선후기 실학에서 북한의 주체철학과 남한의 80년대 민중운동까지의 사상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엮어 통사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미 이런 책이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만약 나와 있을 정도라면 아무리 그 양이 빈곤하더라도 응당 고등학교 윤리 교과 과정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다음 챕터로 한국철학이 언급되어야지만 정상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약용, 박지원, 강일순, 함석헌 등 국내에도 탐구해 보아야 할 사상가들이 참 많은데, 이들을 통틀어 시대사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마땅한 책이 나오게 된다면 반가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