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던 자리마다 별이 빛나다 - 기념시선집 창비시선 300
박형준 외 엮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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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번부더 299번까지의 창비시선집 각 권마다 시 한 편씩을 뽑아서 엮은 책이다. 제목 그대로 아흔 아홉 걸음 걸었던 자리마다 유독 빛나는 시들만 추린 모양이다. 지난 달 초순부터 겨드랑이에 품고 다니면서 자기 전이나 밥 먹기 전이나 하는 무렵에 한 두 편씩 아껴가며 읽었었다. 정복의 야심을 품고 전투적으로 읽었던 책은 읽고 나면 개운하고 의기양양해지는 반면에, 시집은 다 읽고 나면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마냥 헛헛한 기분이 든다. 김선태 시인의 <조금새끼>는 제일 마지막에 실린 시이다. 아쉬워서 옮겨적어 본다.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은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나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새 눈물이 나는 건 왜 일까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 일까요? 아무래도 그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은금동 사람들의 삶과 운명이 죄다 들어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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