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으로 쇠라읽기
윤정윤 지음 / 애플트리태일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라캉으로 쇠라 읽기>보다는 <쇠라로 라캉 읽기>가 더 어울리는 책이다. 그렇담 쇠라로 라캉을 읽어보자. 현상학적 관점에 의거한 라캉의 주장에 따르면,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최초의 시각경험에서 '나'는 자신을 주체로 인식하지 못한다. 외부세계 역시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 단계의 시각 경험에서는 외부세계가 나를 관찰하는 주체이며, 나는 외부세계에 의해 관찰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이다. 외부세계를 주체로, 나를 대상으로 인식하는 시각경험에서 자의식의 단초 즉, 초보적이지만 근본적인 '나'를 의식하는 자의식이 생겨난다.  

현상학적 관점에 따라 라캉은 '나'의 시초를 규명하는 데 있어 '보는 나' 뿐만 아니라 '보여지는 나'까지도 고려한다. 결국 '나'는 '보는 나'의 행위와 '보여지는 나'의 행위 속에서 동시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나'를 주체이면서 객체인, 즉 '반대 방식으로 작동하는 두 항'에 동시에 놓여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라캉은 '나'의 주체적인 측면인 '보는 나'를 <응시>의 개념에, '나'의 객체적인 측면인 '보여지는 나'를 <미미크리>의 개념에 연관시켜 사고를 확장해 나간다. 이 책은 라캉의 미미크리 개념을 적용하여 쇠라의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는 책인데, 정작 저자의 작품 해설 보다도 미미크리라는 개념에 더 관심이 간다.     

미미크리는 생물학적 용어로 ‘한 개체가 다른 종의 개체들과 비슷하게 보임으로써 이득을 얻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보호색 같은 위장술인데, 이 책에서는 천적에게 위험한 것으로 보여서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는 경우와 사냥감을 안심시켜 잡아먹는 경우까지도 모두 미미크리의 범주 안에 넣고 있다. 미미크리는 한마디로 속이려는 노력이며, 이러한 속성은 단지 곤충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나타난다. 변장, 위장, 치장, 분장, 포즈, 가면, 제복, 패션 소품 등 타인을 의식하는 모든 제스처와 장치들이 이에 해당한다. 

한편, 이 책에서는 미미크리와 관련하여 '사악한 눈'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미신 이야기가 하나 등장한다. 이야기의 골자는, 악으로 상징되는 누군가의 강한 시선이 타인에게 사악한 기운을 뻗치고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내용이다. 사악한 눈의 기능이 발휘되는 순간에 주체는 모든 동작을 중지하고 돌처럼 굳어진다. 아니면 돌처럼 굳어지기 전에, 주체는 사악한 눈에 맞서 미미크리적인 행동을 보인다. 즉, 사악한 눈의 마력에 휘말리기 전에 마치 이미 휘말려버린 것 같은 제스쳐, 움직임이 정지된 상태, 죽은 것 같은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미미크리적인 행동의 의의는 주체가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를 분리하고, 후자를 자의적이고 능동적으로(이것이 곤충의 미미크리와 다른점이라고) 구축해 내는 데 있다. 즉, 그러한 일련의 위장술이야말로 주체가 스스로 행하는 적극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미미크리는 시각 대상의 위치에 수동적으로 놓여있는 객체로서의 '나'의 행위가 역설적으로 적극적인 주체성을 담지하게 됨을 보여주는 자연의 단서다. 라캉은 미미크리에 주목함으로써 최초의 시각 경험과 관련하여 '보는 나' 뿐만 아니라 '보여지는 나' 역시 자의식이 구성되는데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을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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