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40호 - 2008.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중반부 쯤에 일본문학의 흐름에 관한 재미있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일본에서 유독 특화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사소설 장르에서 ‘나’라고 하는 주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하는 것이 그 글의 화두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세대 작가군: 60~70년대 이야기. 냉전시대의 영향인지 몰라도 시대든 개인이든 (이데올로기든 트라우마든)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있는 ‘나’.  

(2)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 세대 작가군: 80~90년대 이야기. 일본 경제의 호황으로 세상을 더 이상 고뇌할 거리가 없는 풍요로운 무대로 인식. 풍요로운 외부세계는 문학의 언어에서 변화하지 않는 배경으로 고정화 됨. 완성된 무대 위에서 ‘나’의 말은 더 이상 공적인 언어가 되기를 지향하지 않고 ‘사적인 웅얼거림’인 채로 부유. (그러나 문학 언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세계에 대한 발언이고 세계를 향한 소통이다. 소설이 사적 웅얼거림에 그치고 만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의 기본적 존재 조건을 부정해 버리는, 그래서 결국 존재의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는 자기모순적 상황에 다름 아닌 것이다. 여기서 일본 문학은 이제 다음 (3)번으로 진화한다.) 

(3) 아베 카즈시게, 히라노 케이이찌로오 세대 작가군: 00년대 이후 일본 문학. ‘나’라고 하는 주체가 해체됨. (이제까지 ‘나’를 부여잡고 토론하던 일본 문학계는 아연실색!) ‘사적인 나’가 소멸하고 대신 캐릭터화 된 ‘무한한 나’의 등장. 즉, 오늘날 일본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의 방식대로) 작가가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사소설 문학의 고전적 방식대로) 작가 자신의 실제 캐릭터를 그대로 작품에 도용하는 것도 아니라, 작가가 직접 자기 자신을 특정 캐릭터로 '자체 튜닝' 시켜버리는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고정불변의 통합된 주체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세상이라고 하는 게임 시뮬레이션 속의 캐릭터로 분해서 그때그때 새로운 소설을 쓸 때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프로그램이 인스톨 될 때마다) 변검술사처럼 전혀 다른 얼굴로 자신을 스스로 바꿔버리는 것. (3)세대도 여전히 (1)세대처럼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지만, 그 작가(주체)라는 것이 그러니까 일관성이 없는 거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어찌 되었든 문학의 흐름과 사상의 흐름이 서로 비슷한 궤를 그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조응'이 빚어내는 리듬과 하모니가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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